Posted by 양피지조각
,


  성공학이나 자기계발서 대부분이 내용은 없고 레토릭만 존재하는 - '그럴듯한 사기'라는 건 익히 알려졌지만 같은 맥락의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젊은이에게 용기 주는 책이라고 추앙 받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나도 힘들었음.. 하지만 성공했음! 너네도 할 수 있음!' 이 단정적인 한마디를 위해 수 많은 격언과 레토릭을 동원하는데, 그 구조는 가히 폭력적이다. '구조'와 '개인'의 문제에서 모든 게 개인의 의지와 노력 탓이라는 후진국형 논리를 못 벗어난다. 


  모두가 구조주의자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모든 걸 개인의 의지로 환원시키는 정서는 현실의 문제에 대해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 '긍정의 힘' 투성이의 자기계발서 대부분이 형편없는 내용을 가진 이유도 이와 같은 특징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공병호나 김난도는 '청춘이 왜 아픈지' 혹은 '너희들은 왜 더 이상 자수성가하기 거의 불가능한지'에 대해서 설명은 안 해준다. '더 노력해!'를 그저 부드러운 말투로만 바꿨을 뿐이다. 때문에 이걸 반복해서 읽으면 읽을수록, 내 삶의 원리로 채택하려고 노력하면 할 수록 희망고문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김난도에게 날리는 한 방.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아빠처럼 살고 싶지는 않지만, 아빠처럼 되기도 힘든 현재 대학생들'의 삶을 쉽고 구체적으로 분석해 냈다. 더불어 현재 취업난과 공무원 열풍, '열심히 일해도 왜 힘든가?', '20대들이 정말 배불러서 투정하는 것인가?', '정말 우리는 공짜병에 걸린 것인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충실한 답변을 제공해준다. 준수한 시사입문서인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2011년 출판된 사회과학 도서중에 가장 흥미로웠다.

Posted by 양피지조각
,
 노무현 대통령을 좋은 기억으로 남기고 싶은 심정은 알겠지만, 확실하게 하고 넘어갈 것이 있다. 모든 것은 노무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명박에게 <747>이 있다면, 노무현에게는 <비전2030>이 있었다.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규제 완화와 개방 확대의 목적으로 한 신자유주의 청사진이다.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보면 국제자유구역, 민영화, 금융허브화 그리고 이와 함께 FTA가 추진되었다. 


노무현의 FTA는 이명박의 FTA와 다르지 않다

당시 추진된 FTA는 현재 이명박 정부의 FTA와 
사실상 차이가 없다. 특히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유보조항과 ISD는 이미 참여정부 시절에 시작된 것이다. 친노 정서가 강한 많은네티즌들은 이를 인정하기 힘들겠지만, 사실 자동차 부문에서의 관세 양보를 조금 더 한 것만 다르고 기본 성질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노무현의 FTA와 이명박의 FTA는 과연 다른가? (2011, 10,29 미디어오늘)
   이명박 정부의 추가 협상 결과 설명 자료 (2011.2.10, 외교통상부) 


 더불어 혹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의 주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시작되었다'라는 주장은 사실관계와 어긋난다. FTA는 전적으로 참여정부의 짝사랑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희망과 달리 미국 통상당국은 한미 FTA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동아시아와의 경제협력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가 공식 채널이라는 미국의 기본 입장만을 들을 수 있었다. 당시 국내에서는 칠레와 타결한 협정에 대한 국회 비준이 지연되고 있었고, 이로 인해 FTA 추진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의지가 강하지 않은 것으로 미국 측은 이해했을 것이다. 
                                                           (외교통상부 브리핑- 사자에겐 더 넓은 들판이 필요합니다, 2006)

  노무현을 좋아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그렇다면 어째서 미국은 노무현의 FTA는 질질 끌었는가? 그리고 왜 이명박의 FTA는 순식간에 통과시켰는가? 노무현의 FTA는 우리에게 유리한 것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 외통부 자료에도 나와있듯 우리나라의 '대내 협상력'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불안요소였다. 다급해진 노무현이 미리 내세운 4대 선결조건(의약품, 자동차, 쇠고기, 스크린쿼터)에 대해 영화인들과 농민들의 반발이 매우 거세지자 갈팡질팡 못하는 정부의 태도는 미국 정부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했던 것이다. 대내 협상력의 부재는 협상 발효 이후에 제대로 실행이 되지 못할 위험성을 수반한다. 덧붙여 이명박 정부의 FTA가 순식간에 통과된 것은 미국에게 유리한 내용이 갑자기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오바마 행정부에서 한미FTA라는 이슈를 통해 지속적인 지지를 얻으려는 필요성에 의한 것이었다. 쇠락한 자동차 산업지인 디트로이트의 야구팀 뉴에라 모자를 쓰고 오바마와 함께 의회 강단에 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참여정부, FTA를 강력추진하다.

   한국에서 FTA라는 개념의 국제통상무역이 추진된 것은 2003년의 일이다. 신자유주의 경제 노선을 택했던 노무현 정부는 당시 중국으로부터 뒤쫓기고 있었던 한국의 상황을 해결해 줄 대안이 FTA라고 판단했다. 2004년 4월 1일 칠레와의 FTA가 공식 발효되었다. 이후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싱가포르, ASEAN과의 FTA를 체결하였다. 그리고 2006년 본격적으로 미국과의 FTA 협상에 들어갔다. 2006년 3월 부터 1년여 동안 8차례에 걸친 공식협상 끝에 한미FTA의 기본 내용이 확정되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 기업이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후발개도국과 기술 우위에 있는 선진국 사이에서 샌드위치처럼 끼어있다고 판단했다. 개방과 시장화를 통해 이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했다. 당시 청와대 경제비서실장이었던 정태인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 내가 대통령한테 2월 26일날 들어가서 한미 FTA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대통령의 첫 질문이 그거였어요. "중국이 한국을 따라오는데 얼마나 걸리냐," 이건 중국 위협론이 굉장히 대통령을 사로잡고, ‘난 그것 때문에 한미 FTA를 한다’라고 적어도 그 때는 확신하고 있었던 거에요. 그래서 내가 "최소한 10년 걸립니다" 했더니, '아니다 훨씬 빠르다'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구요. "

  다른 요인도 존재한다. 당시 청와대 정책 수석이었던 이정우 박사는 참여정부의 FTA 추진에 대해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다.

 "당시 불경기 탓에 저성장이 오래 지속됐고, 보수 언론이 참여 정부를 반미라고 공격했기 때문에 (FTA가) 여러가지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방안이라고 판단한 듯 하다."


노무현과 신자유주의
 

  실제로 노무현은 FTA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그렇게 자신이 없느냐?' 또는 '노동자와 농민들의 이기주의가 문제다'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발언이 가능했던 이유는 대한민국을 더 잘 먹고 잘 살게 하기 위한 그의 방법론이 과거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FTA의 핵심 동기는 참여정부와 현 정부가 지닌 '신자유주의 경제관'이다.  혹자는 "노 정권이 성장보다는 분배를 중요시하여 경제를 망친다."고 비난하지만, 실제 노 정권이 소득 재분배를 위해 한 일은 거의 없다. 노무현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노선을 택했기 때문이다. 노 정권의 정책을 보면 규제 완화, 민영화, 자본 시장 개방, 외국 자본에 대한 우대, 법인세 감면, 노동시장 유연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주를 이루었다. 이로 인해 청년 실업과 고용 불안정이 더 가속화 되고, 중소기업들의 부실화가 지속되었고 비정규직이 급증했다. 반면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은 참여정부 내내 호황을 누렸다.   

 결국 FTA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노무현 신화에 대한 일종의 배격이 필요하다. 이명박을 악마화하는 것에 대한 반대급부로 노무현은 갑자기 천사화 되고 있지만, 우리를 둘러싼 모든 이슈 - 민영화, 고용불안정, FTA, 영리병원은 모두 참여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했다. 그를 좋은 기억으로 남기고 싶은 것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을 지나치게 고평가하고 방어하려는 태도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Posted by 양피지조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