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7W국제전화 논란 양측 입장은?


제주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과 관련해 사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제 전화'와 관련된 논란이 나날이 가열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시민단체와 KT 새노조 등은 5월 1일 또다른 반박자료를 제출했다.


지난 26일 KT는 지난 시민단체와 KT 공대위, KT 새노조 등의 문제제기에 관한 반박자료를 제출한 바 있다. '정상적인 국제전화서비스이며, 자체시스템을 구축하여 저렴한 서비스를 제공했으며, KT는 수익을 전부 사회에 환원했다'는 내용이다. 


도대체 뭐가 진실일까. KT와 시민단체,새노조 간 주장을 비교·정리해 봤다.


1.  정상적인 국제전화다 vs 명백한 국내전화다 


KT는 세계 7대경관 전화투표가 정상적인 국제망을 통한 투표 서비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새노조는 '국제망'이라는 그럴듯한 표현으로 속이고 있다고 받아쳤다. 국제망이라는 표현은 인터넷이 포함되는 데이터망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화망과는 다른 개념이라는 것이다. '국제전화망에 접속한 게 아니라 단지 국제망을 통해 데이터를 보냈다면 그것은 국제전화일 수 없다'는 것이 새노조 측의 주장이다.  


새노조는 '요금은 국제전화요금으로 부과됐지만 해외전화망에 접속된 바'가 없다고도 밝혔다. 대한민국 내에 있는 대전 소재의 국제 지능망교환기에 접속한 것이 전부이며 어떤 해외 전화망에 접속된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이것이 정상적인 국제전화를 통한 투표라면 다른 나라에서도 그 번호로 투표가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국제전화는 전 세계 어디서나 동일한 번호를 통해 연결이 되는 것이므로 다른 나라에서 이 번호를 사용해서 투표와 접속이 되어야 정상이지만 이 번호는 오로지 국내용이었다.'면서 '해외에서는 접속이 되는지 확인이 되지 않는다며 해외에서 이 번호로 투표가 가능했는지 여부와 특히 일본에서 국내전화로 이 번호로 연결이 가능한지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2. 요금 비싸지 않다 vs 타 국가보다 비싸다


KT는 반박문을 통해 '영국에 직접 투표하면 1344원이 드는데 자체시스템을 구축하여 15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투표가 가능하게 했다고 밝혔다. 필리핀에 이어 후보지 중 두 번째로 저렴하다는 자료를 발표하기도 했다.


새노조는 이에 대해 본래 '국제문화 투표의 경우 KT 약관에 100원으로 명시되어 있는데, 150원을 받은 것은 약관위반'이라고 반박했다. 



▲ 시민단체, 새노조가 새로 제시한 자료. 필리핀에 이어 두 번째로 저렴하다는 KT의 주장과는 차이가 많이 난다. <출처 : 제주의소리> 


KT가 '필리핀에 이어 후보지 중 두번째로 저렴하다'는 발표 내용에 대해 실제 조사 가격을 발표하며 'KT의 해명이 사실과 다르다'고 덧붙였다. 새노조가 발표한 자료는 KT의 자료와 달리 가장 높은 수준의 요금이 부과된 것으로 나왔다.


3. 정보이용료는 왜 포함? - 수익 챙긴 제 3자 있나


KT는 '약관에 100원으로 신고한 국제문자메시지와 달리 해당 문자투표에 대해서만 150원을 부과했다는 지적에 대해 ‘정보이용료’가 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해명을 한 바 있다. 새노조는 이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미리 고지되지 않은 정보이용료가 포함된 것은 약관 위반이라는 것이다. 


'정보이용료는 KT의 수익이 아니라 제 3의 컨텐츠 제공업체에게 이익이 돌아가는데, KT는 이에 어느 업체가 얼마만큼 이익을 챙겼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며 어떤 컨텐츠 제공업체가 얼마의 정보이용료를 챙겼는지 밝혀야한다고 주장했다.


4. '41억 제주도에 환원' vs 근거 없다 


KT는 이번 전화투표를 통해 일체의 이득을 취한 바 없으며 발생 수익을 전액 기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새노조는 확인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도대체 전 국민이 얼만큼의 투표를 했는지 조차 밝히지 않았다. 41억원을 제주도에 환원했다고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는 ‘환원’이 아니라 ‘상계'이다'라면서 N7W 재단과의 수익배분에 관한 계약서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더불어 시민단체와 새노조는 이전에 폭로한 착신지 변경에 대해 제대로 해명하지 않은 것 또한 지적했다. 


새노조는 '애초에 KT는 문제의 001-1588-7715 전화번호가 영국으로 걸려가는 전화의 단순한 단축번호라고 주장'했다가 '하루에 200만통의 국제전화가 걸려가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일본에 서버를 두고 일방향으로 투표결과를 보낸 것으로 문제가 없다'고 말을 바꿨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다시 '통화내역서에 국제전화의 착신국가가 일본이 아닌 영국으로 명기되어 있음이 폭로되지 단순한 실수라고 변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새노조는  '앞뒤가 안 맞는 해명과 실수가 반복되고 있다'면서 투명하게 N7W와의 수익배분 계약내용을 공개하고 수익금 내용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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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 해군기지 논란에 대해 넘쳐나는 기사와 블로그 포스트들 사이에서 도저히 감을 잡기 힘들다면 이 영상이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KBS는 이번 방송을 통해 탐사 보도에 있어 일종의 클래스를 입증했다. 핵심을 잘 정리해 깔끔하다. KBS 정회원이라면  http://www.kbs.co.kr/2tv/sisa/chu60/vod/1740999_879.html 로 가시면 되고, 나머지는 밑에 링크로.


KBS 추적60분 -'5년째 반대, 강정마을엔 무슨일이'

1/4  파괴된 공동체
http://www.youtube.com/watch?v=xUTng9R1lcI
 
2/4  주민들의 갈등상황, 해군기지 필요성 논쟁
http://www.youtube.com/watch?v=JB0wzP2czwE&feature=related 

3/4 해군기지 필요성 논쟁, 환경 관련 문제
http://www.youtube.com/watch?v=VfE9qOyO53g&feature=related 

4/4  절차, 과정의 문제
http://www.youtube.com/watch?v=9fGdcR1SdrM&feature=rel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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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적60분의 현지취재로 더 이상 제주도 행정부의 변명은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이전에도 명백한 정황들은 계속 나왔지만, 이 영상들은 더욱 강한 설득력을 지닌다. 뉴세븐원더스는 국제적인 권위를 갖기는 커녕 실제 존립 여부 자체도 불분명한 '유령회사'였던 셈이다. 타 지역에서 방송을 보는 사람들이라면 '오래 전 부터 밝혀진 사기인데 뭘'하고 넘어갈수도 있겠지만 아마 현지(제주도)는 당분간 충격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기본 기능 상실한 지역언론들

  제주도에는 <한라일보>, <제주일보>, <제민일보> 등의 일간지가 있다. 동시에 공중파의 지역총국이 있으며 지역방송인 KCTV와 JIBS가 존재한다. 거의 2년에 걸친 보도를 꾸준히 챙겨보았지만 어느 매체도 그 신뢰성이나 영향력을 확인하지 않았다. UN과의 파트너쉽이 유지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오마이뉴스와 같은 매체에서 뉴세븐원더스의 실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을 때에도 제주 지역언론들은 '범도민의 힘 모아야 할 때'와 같은 레토릭을 1면에 내세웠다. 그들에게는, 굳이 행정부와 지역유지를 건드려서 상황을 복잡하게 고통스럽게 만들 필요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분위기에 편승하는 쪽이 위험부담이 적었을 것이다.

  <제주도민일보>만이 비교적 정확한 맥락에서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제주도민일보>는 이에 대한 암묵적 보복으로 도지사 인사말 거부와 백지광고 사태를 맞았다. 여전히 제주도 행정부는 '제주도민일보가 편파, 왜곡보도를 일삼고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왜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을까?  

   이 상황을 꿰뚫는 것은 기본적으로 궁핍한 지방자치단체의 현실이다. 경제적으로 여러움을 겪는 다른 지자체가 그렇듯이 제주도 역시 외부 자본 유치와 지역 홍보에 목을 맬 수 밖에 없다. 특히 도 행정부의 입장에서는 7대자연경관을 통해 관심도를 높일 경우 그것을 통해 그 어떤 추진사업보다 좋은 업적으로 남게될 것이 분명했다. 
 

  언론과 함께 도 행정부와 최고 관료들, 지역 주요 인사들이 나서서 이 이벤트를 크게 만들었다. 제주도민들이 이것을 상당한 규모의 국제적인 행사로 인식했음은 두 말할 것도 없다. 학교마다 투표를 독려하는 공문이 발송되었고, 주요 관광지와 공항에는 컴퓨터와 전화기와 함께 투표 홍보소가 설치되었다. 
분위기는 고조되어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노력했던 평창에 필적한 수준이었다. 학교 교무실마다 '7대 자연경관 투표 참여 독려' 공문이 버젓이 붙여져 있었다.   


지자체의 안타깝고 복잡한 현실

  제주도는 전국에서 정경유착이 가장 심각한 곳 중 하나이다. 작은 단위의 지역공동체, 청년회, 대학교 총학생회, 건설 업체, 언론사가 내부적으로 애매하고 난해하게 얽혀있다. 각 집단의 리더들은 서로의 이익을 보장하고 보호해준다. 그리고 그 밑에 행동대장(!)들은 거기서 나오는 적은 이익과 자부심으로 삶을 유지한다. 이는 제주도민이 출세할 수 있는 최대의 한계가 '제주도 행정부의 고위 관료직'라고 여기는 정서 탓이다. 

  사실 대부분의 
지역사회에서는 관료와 자본, 언론의 불합리성에 대해 지적하기가 중앙보다 힘들다. 건너 건너 다 아는 사람이고, 적당히 정치하면서 살아가는 청년회장들(마름)과 지역유지와 정치인(지주)의 관계가 너무 탄탄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지역사회의 툭수성과 맞물려 7대자연경관이라는 '전시행정'은 21세기에는 불가능할 법한 유령단체의 사업을 국가적 차원의 이벤트로 끌어올리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제주의 소리>와 <제주도민일보> 정도를 제외한 지역언론들은 사실상 언론의 기본 기능을 스스로 거세하고 풍문에 동참했다. 지역 주류사회의 삽질에, 결국 보통의 제주도민들만 글로벌 호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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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학이나 자기계발서 대부분이 내용은 없고 레토릭만 존재하는 - '그럴듯한 사기'라는 건 익히 알려졌지만 같은 맥락의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젊은이에게 용기 주는 책이라고 추앙 받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나도 힘들었음.. 하지만 성공했음! 너네도 할 수 있음!' 이 단정적인 한마디를 위해 수 많은 격언과 레토릭을 동원하는데, 그 구조는 가히 폭력적이다. '구조'와 '개인'의 문제에서 모든 게 개인의 의지와 노력 탓이라는 후진국형 논리를 못 벗어난다. 


  모두가 구조주의자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모든 걸 개인의 의지로 환원시키는 정서는 현실의 문제에 대해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 '긍정의 힘' 투성이의 자기계발서 대부분이 형편없는 내용을 가진 이유도 이와 같은 특징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공병호나 김난도는 '청춘이 왜 아픈지' 혹은 '너희들은 왜 더 이상 자수성가하기 거의 불가능한지'에 대해서 설명은 안 해준다. '더 노력해!'를 그저 부드러운 말투로만 바꿨을 뿐이다. 때문에 이걸 반복해서 읽으면 읽을수록, 내 삶의 원리로 채택하려고 노력하면 할 수록 희망고문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김난도에게 날리는 한 방.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아빠처럼 살고 싶지는 않지만, 아빠처럼 되기도 힘든 현재 대학생들'의 삶을 쉽고 구체적으로 분석해 냈다. 더불어 현재 취업난과 공무원 열풍, '열심히 일해도 왜 힘든가?', '20대들이 정말 배불러서 투정하는 것인가?', '정말 우리는 공짜병에 걸린 것인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충실한 답변을 제공해준다. 준수한 시사입문서인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2011년 출판된 사회과학 도서중에 가장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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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 다큐프라임 - 언어발달의 수수께끼>와 <학교를 무엇인가>를 보고나서 


  <학교란 무엇인가>에 영국 써머힐 학교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말 그대로 온 몸에 전율을 느꼈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졌다. 몇 번이고 영상을 다시 돌려봤다. 그런데 그 날 잠들기 전 문득 혼란스러워졌다. 엄마가 중고등학교 내내 내게 했던 말씀 '악착같이 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긍정의 주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 그래서 공부에는 노력이 중요할까, 환경이 중요할까? 적어도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인의 노력이 압도적으로 중요하다는 쪽인 것 같다.
 

직접적 언어의 폭력

  <EBS 다큐프라임 - 언어발달의 수수께끼>는 어떤 의미에서 <학교란 무엇인가>를 정리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학교란 무엇인가>가 다양한 사례를 미시적인 측면에서 보여줬다면 <언어발달의 수수께끼>는 거시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직접 맞닥뜨리는 구조에 대해서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는 셈이다. 때문에, <학교란 무엇인가> 시리즈를 다 보고도 ‘과연 실생활에서 이것을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가’,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혼란스러웠던 나에게 <언어발달의 수수께끼>는 이를 해결해주는 구체적인 방법론과도 같았다.

  이 다큐멘터리의 핵심은 직접적 언어의 폐해를 유용하게 지적해 낸 데 있다. 가정에서 학교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은 개인의 의지를 강조하는 화법만을 접한다. ‘악착같이 열심히 하면 돼’, ‘노력이 제일 중요해!’ - 너는 충분히 풍요로운 환경에 있으며 노력을 안 한다, 네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성적은 오르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들에게 구조와 환경의 문제를 거론하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서울대 수석 합격’한 어느 시골 고등학생의 토픽성 기사들을 이야기할 뿐이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표본 설정은 어떤 의미도 우리에게 가져다주지 않는다.
 

구조와 개인 사이에서

  사실 이 다큐멘터리가 궁극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부모, 교사 등 기성세대가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갖고 있는 프레임의 오류이다. 교육의 성취도는 개인의 의지와 환경의 교집합이다. 좀 더 거칠게 말하자면 그 개인의 의지-학습에 대한 동기, 성취감에 대한 태도-역시 환경에서 파생된 것이다. 때문에 노력의 강요나 자기계발서식의 긍정의 강요는 큰 효과를 나타내기 힘들다.

 『왜 잘 사는 집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할까?』라는 책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고학력 부모를 둔 학생들이 저학력 노동자층 자녀들보다 공부를 훨씬 잘하는 통계를 설명한 이 책이 제시하는 것은 자녀들을 둘러싼 환경의 문제이다. 중산층과 상류층의 자녀들이 서민들의 자녀보다 성적이 좋은 이유는 단순히 고액 과외를 받아서가 아니다. ‘강북의 부모들은 과외 교사에게 성적을 많이 올려달라고 요구하지만, 대치동의 부모들은 과외교사에게 글로벌 감각을 키워달라고 요구한다’는 우스꽝스러운 반 쯔음 진담이 떠돌기도 한다. 전문직 부모들은 자연스럽게 자녀들에게 심리적 안정감, 동기 부여, 학습에 대한 긍정적 가치관을 형성시킨다. 학력 중산층은 자신들이 누리는 계급적 위치의 장점을 현재의 현실세계에서 향유하며 자녀들은 이를 생생하게 체험한다. 자연스럽게 행복한 삶과 교육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개인의 인식은 그를 둘러싼 환경으로부터 형성된다는 지적이다. <학교란 무엇인가>에 등장한 써머힐 학교의 학생들이 교육에 대한 열망으로 충만하고, 학습 성취도가 높은 이유는 바로 적절한 환경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써머힐의 교사와 행정가들이 만들어낸 획기적인 교육 환경이 학습자들에게 높은 성취를 가져다 준 것이다. 학습에 대한 개인의 의지는 환경으로부터 형성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정이 구조와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않고 모든 것을 개인의 의지로 환원시킨다.
 

교육자 지망생에게 최고의 교과서

  교육은 환경과 개인의 상호작용이며, 그 중심에는 바로 언어의 힘이 존재한다. 학습은 구조(사회, 가정)과 개인(학습지)의 상호작용에서 이루어진다. 때문에 개인을 둘러싼 환경과 구조를 간과한 채 학습자의 의지만 강조하는 부모와 교사들의 인식은 지양되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내뱉는 직접적인 언어들 -‘너는 왜 이렇게 게으르니?’,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해! 악착같이!’-이 쌓이면 곧 폭력이 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그 말을 듣는다고 원래 안하던 애(동기가 존재하지 않는 학습자)가 공부를 제대로 할 리 만무하다.

  이러한 인식의 결함을 지적하고 자발적으로 학습에 대한 동기를 유발시키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다큐멘터리가 전하는 메시지이다. 한국의 교육 문화가 지니고 있는 결핍을 구체적으로 잘 분석한 낸 것이다. 적어도 교사를 꿈꾸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추천해주고 싶다. 특히 <학교란 무엇인가>를 함께 보면서 이어지는 의미를 유기적으로 해석한다면 그것보다 멋진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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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촛불집회 이후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의제 중 하나가 바로 '소통'이다. 이 소통에 대한 담론들은 개인과 개인 사이의 효과적인 의사전달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제도권 정치와 시민사회가 만나는 합리적 장(場)에 대한 요청이기도 했다. 이 공익광고는 소통을 직접적인 주제로 다뤘다는 점에서 2년 전 요구에 대한 주류사회의 하나의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광고는 분쟁과 갈등을 부정적인 태도로 간주하며 그것을 '마음 속 리모컨'으로 형상화한다. 곧이어 타인의 생각을 인정하는 윤리를 강조하며 '마음의 문을 열어라'라는 요청을 한다.

  최근 몇 년 간 사회적 갈등이 경제적 위기를 자초한다거나, 시위의 폭력성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놓았던 행정부와 언론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마음 속 리모컨>이 형성하는 의미는 명확해진다. 다시 말하면, <마음 속 리모컨>은 '갈등'을 해결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봉합하고 숨겨야 할 대상으로 본다는 점에서 한국 주류사회가 지니고 있는 전근대적인 사고의 실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전근대성은 '갈등은 나쁜 것'이라는 전제이다. 사실, 갈등은 균형이 깨졌을 때 발생한다. 특히 그 불균형의 원인이 사회의 불합리한 역학이나 현실정치에 있을 경우 발생하는 갈등은 비합리성을 개선하고 사회성 건전성을 높여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굳이 갈등주의적 관점을 취하지 않더라도, 갈등은 해결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기본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태도는 갈등의 원인이 되는 문제 자체를 해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광고의 서사에서 갈등은 해결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숨기고 봉합해야 할 금기이다.

  제작자가 직접 밝힌 <마음 속 리모컨>의 주제에 대한 설명은 이와 같은 측면을 더욱 부각시켜준다. 제작자인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가 직접 '사회공동체-벽 허물기(소통을 통한 사회통합)'가 주제라고 밝히고 있는 이 광고에 '관용과 배려를 바탕으로 사회통합을 이루지 않고서는 진정한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설명도 추가로 덧붙이고 있다. 비단 강정 해군기지 논란뿐만 아니라, 한진중공업이나 무상급식 논쟁과 같은 일련의 사회적 논쟁에서 등장하는 '사회통합'과 '갈등 봉합' 표현이 함의를 감안할 때, 위 설명은 갈등에 대한 주류사회의 정서를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다시 말해, '국민총화'와 같은 레토릭까지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한국 현대사에서 갈등은 해결이 아니라 나타나서는 최대한 빨리 사라져야할 안 되는 불합리한 상황으로 인식되는 셈이다. 이와 같은 인식이 정치공학적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광고가 의도하는 바는 더욱 뚜렷해진다.


<마음 속 리모컨>의 레토릭

  마음 속 리모컨을 끌 것을 요구하는 나레이션과 함께 화면 가득히 '대한민국 사회갈등 비용 연간 300조원' 텍스트가 등장한다. '사회갈등 비용 300조원'이라는 문장은 최근 정치인의 강연이나 인터뷰, 신문기사에서도 자주 목격된다. '사회갈등 비용 300조'는 2009년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한국의 사회갈등과 경제적 비용’ 이라는 보고서에 포함된 내용이다. 회원국이 돌아가며 개최하는 회의인 20개국(G20) 정상회의의 경제효과를 최대 24조원으로 추산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혹자는 수치의 과장을 의심한다. 특히 이 보고서가 참여정부의 참여민주주의를 실패로 결론 내렸다는 점에서 보았을 때 그 객관성에 의문을 제기할 여지가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이 조사의 방법론과 신뢰성에 대한 판단은 이 분야 전문가의 영역이다. 이 글에서 언급하고자 하는 바는 그 수치의 사실 여부가 아니라 저 레토릭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억압'이다.

  최근 몇 년 간 한국 사회 발생한 사회적 대결은 사회적 약자의 실력 행사로 부터 시작되었다. 촛불시위 이후로 용산참사, 쌍용차 파업, 한진중공업과 희망버스, 명동 마리에 이르기까지 노동자나 비정규직, 세입자들과 같은 상대적 약자와 비교적 갑의 위치에 있는 자본과의 충돌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다. 이러한 충돌이 빈번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한국의 정당정치가 사회적 약자의 요구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도 볼 수 있고, 법적 행동보다 항의전술이 언론의 집중을 얻어내는 데 더 유효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법적·사회적 제도의 불합리로 인해 약자들이 극단적 행동 말고는 별다른 탈출구가 없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 원인이 어찌되었든 중요한 것은 소요사태가 표출되는 때, 그 상황을 유발하는 주체로 인식되는 것은 결국 사회적 약자 쪽이다. 즉, 제도적 문제나 자본의 폭력성을 지원하는 구조는 수면 밑에 머물러 있으며, 표면적으로 볼 때 사회적 갈등을 유발시키는 이들이 결국 집회나 피케팅을 하는 다수의 사회적 약자들이다. 따라서 이 광고는 이들을 부정적으로 이미지화 시키는 데 일조한다. '사회적 갈등 300조'라는 문구가 오버랩 되는 순간 시청자들과 청취자들은 필연적으로 이슈화된 시위현장을 떠올릴 수밖에 없으며, 이 경제적 피해를 만드는 시위의 참여 주체들이 '사회악'으로 형상화 된다. 


샌델과 대한민국

  그렇다면 대중들은 이 광고를 어떻게 수용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거론할 필요가 있다. 2010년과 2011년에 걸쳐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엄청난 화제를 불러 모은 이 교양서적은 처세술과 성공학 책들을 밀어내고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대세를 이루었다. 그 흐름은 지금도 이어져 손꼽히는 추천 교양서로서의 입지를 차지했다. 책과 더불어 그의 실제 강연이 녹화된 DVD가 불티난 듯 팔리고, 샌델의 국내 강연회에서도 대학생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작가가 하버드 교수임을 내세운 출판사의 홍보 마케팅이 성공했다 하더라도 이 정도 센세이션이면 뭔가 다른 요인을 찾아야 하는 게 정상이다. 

  사실, 내한 강연을 왔던 샌댈 교수는 그에게 폭발적인 관심과 열광에 의아해 했다. 그의 책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거나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지 "의견의 불일치를 받아들이고 도덕적 분쟁을 인정하는 것”을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첫 단계라고 제시한 책이었다. 이 상식적인 내용이 한국에서는 폭발적 인기라는 사실에 샌델 교수는 놀라움을 나타냈다. 동시에 그는 이에 대해 “한국 사회가 그만큼 정의를 갈구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의견 불일치를 받아들이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출발점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의 가장 큰 과제는 공공논의의 장을 마련해 정의, 공공 선(善) 같은 답하기 어려운 문제를 다루는 것이죠."

- 마이클 샌델, 2010년 방한 기자간담회에서

  그가 말하는 정의는 일종의 공공 선(善)이다. 이 공공 선은 모두가 합리적으로 인정할만한 보편적인 가치 이자 기준으로, 이 공공 선에 대한 합의에 이르기 위해 끊임없는 토론과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즉,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제작되는 공익광고는 공공 선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가치를 내세워야 한다. 하지만 <마음 속 리모컨>은 그 공공 선에 대해 판단이 작위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성과 관용이라는 원래의 취지를 배반하는 결과를 낳는 자가당착에 빠져버렸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열풍은 이러한 광고 이면의 의도가 수용자들에게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징후이기도 하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마음 속 리모컨>의 나타내는 '갈등에 대한 혐오'와 대중들의 '정치적인 것에 대한 혐오'가 만나는 지점이다. 이곳에서 '갈등에 대한 혐오'는 '정치에 대한 혐오'를 극복하지 못한 채 사장되고, 결국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갈망'이라는 대중적 욕구로 재탄생한다. 그리고 그 대중적 욕구가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열광이라고 할 수 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마음 속 리모컨>은 다른 공익광고와 비교해서도 수용자들에게 큰 인상을 주지 못하고 별 다른 이슈를 만들어 내지 못한 반면, <정의란 무엇인가>는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마음 속 리모컨>과 같은 광고는 의견의 불일치와 갈등을 단정적으로 부정하는 '정의롭지 못한 광고'이기 때문이다. 결국, <마음 속 리모컨>은 그 자체로 논리적 결함을 지닌 동시에, 샌델의 책과 달리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요구를 분석해 내는 데에도 실패했다.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의 정서가 이러한데, 타자인 샌델이 이 광고를 보았을 때 그의 반응을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동시에 그는 그제야 그리 특별하지 않은 그의 책이 어째서 한국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는지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2008년부터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소통'이라는 의제는 <마음 속 리모컨>이라는 광고와 <정의란 무엇인가>의 열풍 사이에서 이와 같이 재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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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꼼수다>가 지닌 영향력은 점점 강력해지고 있다. 대놓고 '반 MB'를 내세운 이 인터넷방송이 히트를 치자 이명박 지지자들은 난리가 났다. 하지만 정제원의 발언에서도 발견할 수 있듯, 나꼼수에 대한 기성정당의 비판은 철저히 정치공학적이며 영양가 없는 비난에 불과했다. 누구도 공감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잠수함 속의 토끼' 진중권이 입을 열었다.

  진중권은 이미 나꼼수 17화에서 곽노현 교육감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바 있었다. 실제로, 17회에서 19회에 이르기까지 김어준은 이전 편의 '구체적인 팩트에 의한 이해관계의 폭로'와는 다르게 다소 온정주의적으로 접근했다. 노무현이나 한명숙이 당했던 표적 수사와는 명백한 차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곽노현 사건을 이와 엮어서 그를 희생양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진중권이 오마이뉴스에 기재한 '곽노현 거울에 비친 진보의 일그러진 초상'은 이 상황을 가장 완벽하게 정리한 텍스트이며, 나꼼수가 사용한 온정주의적 프레임의 오류를 지적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의미하다.) 덧붙여 <나꼼수>를 '닭장속에 닭'에 비유하며 대중들을 '선동'하고 있다는 의견을 보이기도 했다.


문제의 시작

  본격적인 문제는 10월 29일 나꼼수 콘서트를 관람하고 온 관객들이 '에리카 김과 이명박 대통령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는 글을 올린 직후에 시작되었다. 실제로 콘서트에서 주진우 기자는 '(그분과 나는) 부적절한 관계였다'와 같은 내용이 포함되는 에리카 김의 녹취 내용을 공개했다. 또한 김용민이 이명박 대통령의 친자확인과 관련해 '눈 찢어진 아이를 데려오겠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 날 밤부터 모든 포털사이트에는 인기 검색어에는 '눈 찢어진 아이'와 '에리카 김'이 랭크되었다. 진중권은 이를 '외설적이며 폭력적이다'라고 판단하면서 트위터에 글을 올렸고, 많은 팔로워들이 이에 반박하고, 관련 기사가 나오면서 파장은 커졌다.


진중권의 주장 - 폭력적이며 외설적이다

  진 씨는 30일 한 트위터리안이 “(나는 꼼수다의) ‘눈 찢어진 아이’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너저분한 얘기라고 생각한다“며 ”야담과 실화. 저열하고 비열한 공격. 언젠가 똑같이 당할 것. 무엇보다도 불필요한 공격, 도대체 뭘 위한건지"라고 비판한 것이다.  진씨는 또 "주진우의 저질 폭로가 '팩트'라면 아무 문제 없다고 버젓이 말하는 저 정신상태가 황당하다"고 비판하고 "한껏 들떠서 정신줄 놓고 막장까지 간거다. 저럴 것 같아서 내가 미리 경고했거늘... 포르노라는게 원래 노출 수위를 계속 높여야 한다"며 "주진우, 정봉주는 사실을 만진다. 그건 개그가 더 이상 개그가 아닌 순간이 존재한다는 얘기"라고 비판적 견해를 밝혔다.  

  (미디어 오늘, 2011.10.31)

  진중권의 의견을 가장 잘 정리한 텍스트이다. 이와 더불어 진중권은 “눈찢어진 아이는 BBK와 전혀 관련이 없죠. 에리카킴과의 관계 역시 본질과 아무 관계 없어요. 핵심은 (1) 실소유주가 누구냐, (2) 주가조작에 관여했느냐인데, 그건 에리카킴과 염문을 갖느냐 마느냐와는 논리적으로 독립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대중들의 분노 - 순기능을 모조리 무시했다

  폭압적인 언론 장악 행태(정권이 임명 방송사 사정들의 비판 차단, 진보 인사들 공중파 하차 강압 의혹, 방통위의 검열기관화)에 지리멸리함과 공포를 동시에 느끼던 대중들에게 <나꼼수>는 정말 속시원하고 신선한 포멧이었다. 특히 사실성에 기반한 주진우의 취재 일기는 프로그램의 질을 상승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진중권은 특유의 냉소적 논법으로 모든 패널들을 비판했다. '너절리즘'이라고 주진우를 비꼬고, '정봉주 의원은 결정적 한방이 없으니 사생활 잡기로 들어간다'라고 글을 올렸다.

  나꼼수의 지지자들은 분노했다. 정권의 폭압적 언론 행정 밑에서, 단비와 같았던 <나꼼수>에게 어떻게 이렇게 강력하고 노골적인 언어로 비난할 수 있냐는 것이다. '그 동안 극우언론들에게 어떻게 당하고 살았는데, 이에 반대에서 노력한 나꼼수에게 어떻게 이럴수 있냐', '조중동이 더 심하게 할 때는 가만히 있고 왜 이럴 때 나서서 논란 만드냐'가 공통적인 심리이다. 나꼼수의 순기능을 외면한 채 역기능에만 깔대기를 대고 있다는 것이다.  


<나꼼수>가 제2의 아고라가 되지 않기 위해서

  다음 아고라는 한 때 공론장에 가장 근접했던 커뮤니티 중 하나였다.(적어도 내 기억에는) 하지만 2008년 6월 이후 급격히 늘어난 유저들 대부분이 '반MB 정서'를 기반으로 모든 상황을 해석해 버리는 데에서 이 커뮤니티의 몰락은 시작되었다. 노무현, 야당, MBC, 서민(선) - (악) 이명박, 한나라당, 조중동, 기득권 이라는 아고라식 프레임은 그들의 지배적 담론이 되었다. 노무현의 신자유주의 행위를 외면하고 그를 천사화 했으며, 야당과 유시민, 김대중은 무조건적으로 옹호되었다. 이러한 아고라식 선악구도는 현실 정치를 설명하는 데 별로 유용하지도 못했으며, 사실관계마저 흐트려 버렸다. 영향력은 한정적이었고, 새로운 논의 없이 과거의 것이 반복되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은 한 때 다중지성과 촛불의 1등 공신으로 여겨졌던 아고라를 네이버 댓글이나 정사갤과 다름없이 여기게 되었다.

  <나꼼수>가 배워야 할 지점은 바로 여기이다. 다음아고라의 단정적인 면은 나꼼수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동안의 맥락을 고려할 때 콘서트 발언은 선정적이었고, 대중들은 이를 외설적으로 소비했으며, 그것이 '반MB 정서'를 통해 정당화 되었다. 이것이 아고라식 프레임이 나꼼수와 지닌 치명적인 유사점이다. '이것이 애초의 프로그램 포멧이다!'라고 이야기 하기에는 이미 나꼼수는 쇼가 아닌 막강한 정치평론이 되어버린지 오래이다. 특히, 그것을 쇼가 아닌 진리로서 소비하는 대중들이 이것을 '원래 그런 프로 아니냐'고 대답을 해버린다면 스스로 자멸하는 꼴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상황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혹은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아래의 텍스트가 훌륭한 참고가 되어준다. 문화 평론가 이택광이 나꼼수 논란에 대해 남긴 트윗이다.
 


진중권의 몇 가지 자승자박

  하지만 진중권의 주장 역시 몇 가지 극복해야 할 문제는 남아있다. 진중권은 <나꼼수>가 '팩트와 픽션을 넘나들어 위험하다'라고 판단했지만, 사실 나꼼수 진행의 바탕이 되는 정보들은 정확한 편이다. 특히 주진우가 제공하는 취재 일기의 순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진중권이 17회 말고는 나꼼수를 들어본 적이 없는 상황에서 단정적인 판단을 내렸다고 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중들의 수용방식에만 집중을 하고 그 원본 텍스트에 대해서는 정보가 전무한 상태라는 것이다. 실제로 한윤형이나 허지웅의 나꼼수에 대한 비판이 '과연 그 방송을 제대로 들어보고 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 맥락이다. 거시적인 기존 담론의 틀을 맞추기 위해서 하나의 상황을 전체화했다는 비판이 가능한 부분이다.  

  덧붙여 진중권은 주진우에 대해 "저질 폭로가 팩트라면 아무 문제 없다고 버젓이 말하는 저 정신상태가 황당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바로 당장 진중권이 극복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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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살리고 나라를 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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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성명

정부는 미온적 검역중단이 아닌 수입금지 등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한다.

최근 수입된 미국산 쇠고기에서 광우병 위험물질이 발견되었다.

정부의 안전하다는 주장만 믿고 수입 쇠고기를 사먹은 국민들은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이 발견된 소가 광우병이 걸린 소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이번에 발견된 위험물질을 광우병 유발인자로 확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광우병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은 해당 위험물질이 완전히 안전하다고도 단정짓기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농림부는 수입쇠고기에서 광우병 위험물질이 발견되었는데도 “척수를 제거한 척추뼈는 문제가 없고, 따라서 유통 중인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발표를 서슴치 않고 있다.

척수가 제거되었다고는 하나 척추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되는 광우병 특정위험물질인 말단 신경조직까지 완전히 제거되었다고 확신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정부는 지난해 9월 쇠고기 수입을 최종 승인하는 과정에서 가축방역협의회를 개최하고도 아무런 회의록을 남기지 않았고 비공개로 진행한 후 수입재개 결과만을 간단히 발표했다.

수입여부를 결정하는 중대한 협의내용을 회의록도 작성치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그것도 비공개로 진행할 수 있는가? 협의회의 인원구성도 정부측 입장을 대변하는 전문가들과 정부기관 관계자들이 압도적인 구도에서 국민건강 차원의 의견을 얼마나 제시하고 반영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뼈있는 쇠고기 수입허용을 논하기 위해 지난 7월 25일 개최한 가축방역협의회에서도 정부는 기자들의 접근을 차단한 채 비공개로 논의를 진행하였고 이날 농림부가 제시한 회의자료에는 수입 쇠고기로 인한 인체감염 가능성과 국내 광우병 유입 우려는 무시할 만한 수준”이라는 정부측 입장을 주로 담은 수입국 현지조사 결과를 내놓았다.<농림부 제출-미국산쇠고기의광우병위험분석 검토(안) 참조>

그러나 쇠고기 수입국의 현지조사 결과, 정부가 안전하다고 평가한 미국의 쇠고기 수출시스템에서 결국 광우병 위험물질이 발견된 것이다.

정부는 지난 쇠고기 수입재개 결정 당시 수입위험평가 절차를 비공개로 진행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광우병 위험물질 발견 사건의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는 정부의 정책결정은 신중하고 투명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 광우병 유발물질 발견 사태와 관련 지난해 수입결정 당시 비공개로 이루어진 수입위험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식품안전을 위해 미온적 검역중단이 아닌 수입금지 조치 등 단호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켜야할 것이다.

2007. 8. 3

한나라당 제4정책조정위원장 김 석 준

<참고자료>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관련 일지 <출처-연합뉴스>

▲ 2003.12 = 미국 워싱턴주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 발견

▲ 2003.12.27 = 한국, 미국산 쇠고기 수입금지

▲ 2005.2.28 = 한.미 광우병 전문가협의회 개최

▲ 2005.5 = 국제수역사무국, 30개월 이하 소 살코기 교역 자유화 규약 채택

▲ 2005.6.10 = 미국 광우병 감염 소 추가 발견

▲ 2005.12.15 = 박홍수 농림부 장관, 미국과 협상 착수 공식 발언

▲ 2006.1.9∼13 = 고위 실무급 협상진행, 수입조건타결-생후 30개월미만 뼈없는 살코기

▲ 2006.5 = 농림부, 미국 37개 수출작업장 현지 점검

▲ 2006.9.8 = 농림부, 2년10개월만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최종 승인

▲ 2006.10.30 = 미국산 쇠고기 9t 수입

▲ 2006.11.17 = 척 램버트 미국 농업부 차관보 방한, 쇠고기 수입과정 협의

▲ 2006.11.24 = 수입 미국산 쇠고기서 뼛조각 발견, 전량 반송.폐기.

▲ 2006.12.1 = 2차 수입분 3.2t에서도 뼛조각 발견

▲ 2006.12.6 = 3차 수입분 10.2t에서도 뼛조각 발견

▲ 2007. 2.7 = 한-미, 쇠고기수입 검역관련 기술협의 개최

▲ 2007. 3.5∼6 = 한-미, 쇠고기 검역 관련 한미 농업 고위급 협상

▲ 2007. 3.19∼22 = 2차 농업 고위급 협상

▲ 2007. 4.2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

▲ 2007. 4.27 = 미국 쇠고기 6.4t 검역통과

▲ 2007. 5.22 = 국제수역사무국(OIE), 미국.캐나다 광우병위험통제국 판정

▲ 2007. 5.28 = 권오규 부총리, 미국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개정 협상 선언.

▲ 2007. 5.30 = 미 쇠고기서 갈비발견

▲ 2007. 6.4 = 미 쇠고기 검역 전면 보류

▲ 2007. 6.8 = 농림부, 미 쇠고기 검역보류 해제

▲ 2007. 6.30∼7.8 = 농림부, 미국 가축위생 현지 실태 조사

▲ 2007. 7.13 = 롯데마트, 미 쇠고기 판매 개시

▲ 2007. 7.25 = 농림부, 가축방역협의회 개최..미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논의

▲ 2007. 8.1 = 미 쇠고기서 척추뼈 발견

▲ 2007. 8.2 = 농림부, 미 쇠고기 전면 검역중단 결정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험평가 가축방역협의회 개최 현황 <농림부 제출, 구두확인>

‘05.11.29

광우병 관련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검토

회의 과정 비공개, 최종 결론만 브리핑

회의록 없음

‘05.12.14

광우병 관련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검토

‘07.7.25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분석 검토

가축방역협의회 구성 (참석자 기준)

농림부 3명, 질병관리본부 2명, 검역기관 관계자 5명, 민간단체 관계자 10명

가축방역협의회 역할

수입위험분석 평가절차 중 5단계인 ‘가축방역협의회’는 쇠고기 수입여부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절차로서 정부 관계기관 공무원과 생산자 단체 및 민간 전문가로 이루어진 자문기구이며 의사결정권은 없다지만 사실상 사회적 합의기능을 제공, 정부가 이를 근거로 최종 정책을 결정.

○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의혹

<의혹1> 국제수역사무국의 기준(광우병위험통제국가)을 충족하였다?

-국제수역사무국(OIE) 과학위원회는 광우병 관리실태에 대한 국가별 코멘트에서 미국에 대해 "감염력을 가질 가능성이 있는 원료를 동물용 사료로 이용하는 한 교차오염의 가능성이 있으며, 동물용 사료로부터 SRM(광우병 위험부문)을 제거하는 것을 주의깊게 검토할 것을 조언한다"고 지적한 것으로 확인.

-이는 미국에선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 특정위험물질(SRM)을 소가 먹는 사료의 원료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를 그만두지 않는 한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에 감염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

-OIE 과학위원회의 이 같은 판정과 지적은 상호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데, '광우병 위험이 통제되는 국가'라는 예비판정만으로는 광우병의 감염 위험을 불식시킬 수 없다는 것을 OIE가 스스로 인정하고 있음.

<의혹2> 뼈없는 살코기는 안전하다?


농림부가 작성한 제73차 국제수역사무국 총회 결과보고에 따르면 “우리측은 살코기(골격근육), 혈액제품에 BSE원인체가 오염되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에도 안전제품으로 분류하는 것은 불합리함을 지적”했다는 언급이 있음.

이러한 가능성에 대한 근거는 동물보건법제위원회(Code Commission) 보고서 중 ‘광우병에 감염된 소의 근육을 접종한 10마리의 마우스 중 1마리에서 광우병 병원체의 축적이 확인되었다’는 연구결과임.(Buschmann, A & Groschup M. H. (2005). Journal of Infectious Disease. 192, 934-942

<의혹3> 한국이 미국보다 안전하다?

<동아일보 2007.3. 23 기사>한림대 의대 일송생명과학연구소 김용선 교수팀은 건강한 한국인 529명의 프리온 유전자를 분석했다. 94.33%가 메티오닌-메티오닌, 5.48%가 메티오닌-발린, 0.19%가 발린-발린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는 2004년 ‘저널 오브 휴먼 제네틱스’ 온라인판에 실렸다.

김 교수는 “미국이나 영국은 인구의 약 40%가 메티오닌-메티오닌”이라며 “한국인이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을 경우 인간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미국이나 영국인에 비해 높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또 인간 광우병과 유사한 산발형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에 걸린 한국인 환자 150명의 프리온 유전자를 조사했다. 그 결과도 역시 129번 아미노산이 모두 메티오닌-메티오닌이었다. 이 연구는 2005년 10월 ‘뉴로제네틱스’ 온라인판에 발표됐다.

<오마이뉴스 해외리포트 2007. 5. 28> 쇠고기 수입을 주도하는 정부관계자와 수입업자들은 "미국인들은 안심하고 먹는데 왜 호들갑이냐"고 주장한다. 미국인이 먹는 것은 한국인도 조용히 따라서 먹어야 한다는 논리도 기이하지만, 무엇보다 그 주장 자체가 사실이 아니다. 미국인은 결코 자국산 쇠고기를 안심하고 먹지 않으며, 한국에서 먹는 것과 같은 부위를 같은 방식으로 먹지도 않는다.

미국의 신문과 방송에서는 광우병에 대한 심각한 우려와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광우병적' 대처를 비난하는 목소리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도축기업들과 유착해서 "국민들의 밥상을 러시안룰렛으로 전락시켰다"고 한 목소리로 비판한다. 그 결과 '홀푸드(Whole Food)'와 같은 유기농 산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붉은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이 느는 것은 물론, 치즈와 우유, 그리고 계란까지 거부하는 극단적 채식주의자들의 수도 계속해서 늘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살코기는 안전하다'는 주장만을 되풀이하는 정부를 믿을 수 없다며 자체적인 지침서를 내놓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티본 스테이크나 갈비처럼 뼈가 붙은 부위의 살코기를 먹는 것은 위험하며, 뇌나 척수 등의 신경조직이 포함되기 쉬운 간 고기(분쇄육)과, 뼈 근처의 조각고기로 만드는 소시지, 피자토핑, 미트볼, 햄버거 패티 등도 피해야 한다. 부위와 관계 없이 뼈와 함께 굽거나 끓이는 것 역시 광우병의 원인인 변형단백질의 섭취의 가능성을 높이는 위험한 조리 방법이다.

'특정위험물질(SRM)'로 분류되는 소의 머리와 척수는 물론, 전문가들이 위험부위로 구분하는 사골, 도가니, 꼬리, 갈비 등을, 그것도 장시간 물에 끓여 먹는 식습관을 가진 한국에서는 같은 쇠고기라도 훨씬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한국의 음식은 갈비구이, 설렁탕, 곰탕, 갈비탕은 물론 냉면과 라면스프, 조미료에 이르기까지 고기와 뼈를 같이 요리하거나 장시간 우려내는 조리법이 보편화 되어 있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식습관의 차이를 설명하며 미국정부를 설득했어야 옳다.

더구나 원산지 표시에 대한 규제가 허술하고 사후에 문제가 된 소의 기원을 추적할 아무런 장치도 갖추지 않은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것은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한국 정부가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30개월 미만의 살코기'가 광우병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과학적으로도 밝혀졌다. 일본에서는 21개월짜리 소에서도 광우병이 발견되었고, 미국에서는 뼈와 인접하지 않은 근육부위에서도 광우병을 유발하는 변형단백질이 검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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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현대 언론사를 쭉 훑다보면, 언론이 권력의 시녀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또다른 거대권력이 되어가는 과정을 목격할 수 있다. 군부에 순응해 관변지로 변하던 신문은, 자연스럽게 국가권력과 '형님 좋고 아우 좋고' 관계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밤의 대통령이 누군지 모두가 알고 있다. 언뜻보면 다양한 프레임의 일간지가 등장하여 언론계가 다극화 된 것 같지만, 여전히 극단적인 이미지 중심의 패권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광고수익에 매달릴 수 밖에 없게 된 후 '자본'에 종속화되었다. 이것은 2011년에도 현재진행형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향신문이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태도들은 매우 긍정적이며 좌우를 막론하고 존중받을 만한다. 이미지즘과 레토릭 위주의 기사가 판치는 세상에서 경향신문은 구체적으로 사실을 해체하여 그대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변부만 맴돌다 관성적이고 애매한 비판에 그쳐버리는 담론들을 매일 목격한다. 하지만 경향신문이 최근 보여주고 있는 행보는 이러한 악습과는 분명 반대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구체적이고 세련되었으며, 현실을 직시한다. 물론 모든 지면와 정치 기사가 이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신문의 질적 상황은 계속 긍정적으로 변화되고 있다.

  솔직함이나 용감함은 부차적으로 논의될 사항이다. 경향신문이 보여주는 구체성과 현실감각은 대한민국 정론지의 가능성을 한 단계 더 높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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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와 SNS 사이에서

  질문은 다시 이렇게 정리가 가능하다.'구매체는 이 흐름에 어떻게 대응해야 되는가?' 그리고 이에 대한 대답은 매우 간단하게도 기본적인 개념의 '정론지'가 되는 것이다. 신매체들은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고, 개방성과 상호작용성을 지닌다. 이것은 그들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수 있었던 원동력인 동시에 치명적인 결점이기도 하다. 다양한 정보가 필터링 없이 범람하여 질은 보장되지 못하며, 직접 눈으로 앞에 존재하는 인쇄된 출판물이 아니기 때문에 수용자는 가볍게 그것을 넘기기 쉽다. 예컨대, 조회 수가 높은 기사에는 필연적으로 리플이나 트랙백과 같은 피드백의 기능을 통해 추가의 의견이 개입된다. 그리고 이것은 수용자로 하여금 기사 자체의 텍스트와 함께 또 다른 의미를 형성하게 된다.

  이것은 구매체가 인터넷 매체 보다 더 깊이 있는 담론을 생산 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인터넷 블로그의 글들을 열독하는 대신 책을 구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범위를 어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인터넷에는 다양한 정보들이 존재하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는 '파편화'되어 있다. 때문에, 이를 하나의 유기적인 담론으로 재구성해 낸 체계화된 책이나 지면신문과 같은 매체가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정보의 신속성이나 흥미성은 충족이 되었지만 그에 따라 오히려 종합적이고 깊이 있는 담론을 찾기 힘들어진 까닭이다. 신문의 경쟁력은 이 지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돈을 주고 소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 매체임을 자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언론들은 새로운 대응방식을 모색하기 보다는 점점 무협지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반면 SNS나 위키리크스 같은 현재 가장 뜨거운 매체들은 점점 정치와 사회 경제에 치명적인 플랫폼이 되고 있다. 만약 한국의 신문들이 지금과 같은 갈등적 구도와 과잉적 수사에만 치중할 경우 구매체의 가치는 가까운 미래에 사라지고 말 것이다. 스포츠 신문의 연예면이나 다를 바 없는 정치 기사들에게서 그 어떠한 '정통성'이나 '권위'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장은 흥미가 떨어지고 생소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돈을 내고 구입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프랑스의 <르 몽드>나 영국의 <가디언>을 '이 언론의 논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돈을 내고 구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권력과 자본에 독립적인, 공신력 있는 정론지’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흥미거리에만 치중한 무협지와 같은 기사들이 지양되어야 할 진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정론지' 형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사명감이나 언론윤리와 같은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당장 가까운 미래에 살아남기 위한 존속의 문제이다.


-ps 그럼에도 여전히 대안은 모호하고 애매하다 : 그런 언론을 정말 사람들이 바라기는 하는 걸까? 그런 언론이 등장한다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돈을 주고 구입할까? 이 질문에는 누구도 확답을 할 수 없다. 우리는 단 한 번도 권력과 자본으로 부터 독립적이며, 다수의 대중들이 인정하는 - 정론지를 가져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Posted by 양피지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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