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KIEP에서 퍼낸 『FTA 효과 극대화를 위한 국내대책 및 구조조정정책 방향』, 외교통상부의 브리핑 자료ㆍ인터뷰 내용, FTA 로드맵 시작과 추진에 참여한 참여정부와 현 정부 관료들의 기고문들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정부가 밝히는 효과와 추진 목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거대한 미국 시장에 수출 증가

  WTO 가입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은 수출증대와 해외시장 개척을 통하여 성장하여 왔다. 경제성장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도 무역과 해외투자 등 해외부문에 의지했으며, 이로 인해 대외지향적인 경제 구조를 갖게 되었다. 참여정부와 현 정부는 수출이 압도적으로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경제규모를 키워가면서 정부재정도 늘어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의 FTA라고 판단했다. 주요 교역국이 여타 국가와 먼저 FTA를 체결한다면 우리 상품은 고관세 적용에 따른 가격경쟁력의 저하로 점차 그 시장을 잃을 수 있다. 반대로 우리가 먼저 FTA를 체결한다면 체결하지 않은 다른 국가에 비해 미국에 더 적은 비용으로 물건을 수출하고, 더 적은 규제를 받으며 서비스가 진출할 수 있다. 이것이 전통적 자유무역이론에 등장하는 무역전환효과이다. 한마디로 관세가 사라지고 통상마찰이 줄어 수출이 증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FTA의 기본 철학은 무역장벽 철폐가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제고시키고, 비교우위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킴으로써 경제성장을 촉진시킨다는 전통적인 자유무역이론에 기반한다. 즉, 한국과 미국은 서로 상대적으로 비교우위에 있는 산업에 생산과 수출을 특화함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얻는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2) 경제 구조의 선진화

  외교통상부의 다음 설명은 두 번째 주장의 핵심 근거가 된다.

‘정부는 “동시다발적 FTA 추진전략을 바탕으로 FTA 네트워크를 구축해 나가고 있습니다. 상품분야에서의 관세철폐 뿐만 아니라, 서비스, 투자, 정부조달, 지적재산권, 기술표준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FTA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세계에서 시장주의ㆍ경제자유주의 모델에 가장 근접한 국가는 단연 미국이다. 가장 자본주의화된 미국의 시스템을 한국에 적용함으로써, 한국이 세계 선진국 표준의 체계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국내시장을 해외경쟁에 직면케 함으로써 완전한 시장개방에 앞서서 국내시장을 해외경쟁에 노출시켜 세계적 무역자유화에 대한 적응력을 향상시키는 데 있다고 외교통상부는 밝히고 있다. 정리하자면, 구조의 개선 제도의 선진화를 통해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선진국인 미국의 자본주의 체제로 완전히 도약하기 위한 시도이다.

3) 미국 상품 가격이 내려간다 - 소비자 후생의 증가

  한국 경제관련부처들은 FTA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몇 차례에 걸쳐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FTA의 효과를 설명한 단행본들을 출간했다. 일반 국민들에게 직접적으로 효과를 미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정부는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더 저렴한 가격에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미국의 의류ㆍ육류ㆍ과일ㆍ자동차ㆍ가방 등 공산품의 가격이 내려가고, 우편서비스ㆍ법률서비스 등 공공성이 강하던 분야를 시장화ㆍ민영화시킴으로써 민간사업자 진출이 확대되고 경쟁의 심화되어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다는 점을 구체적인 예시로 든다. ‘한미 FTA의 최대 수혜자는 소비자’라는 슬로건은 이를 한 마디로 정리한 것이다. 

  여기에 외교통상부는 FTA 구체적 내용 중 하나인 규제완화로 인해 외국인 투자가 증가되고, 해외 기업의 한국 진출이 늘어남으로써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도 덧붙이고 있다.  이대로 이루어진다면 매우 기쁜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이렇게 반대를 하고 난리일까?

왜 의견이 다를까? - '구체적인 가정'

  단순히 반이명박 정서(아고라식 프레임)나 괴담 탓이라고 하기엔 FTA 반대 담론들은 체계화되어 있다. 정부가 제시하는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WTO 가입 이후 점차 쇠락해져서 한 해 12조원이 넘는 정부지원을 받아도 겨우 산 송장으로 유지되고 있는 농업이나 '세계화병', '금융 개방'의 폐해로 인해 경제적으로 위태로워진 서민들의 삶 - 이것을 유발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은 이러한 반대 담론의 전신이다. 

   전문가들 간의 의견 대립은 일반 대중으로서는 매우 난감한 일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정부가 사기를 친다' 또는 '정부가 국민을 망하게 할리가 있냐!', '이해관계가 있는 대기업만 배불리는 일이다!', 'FTA 반대는 나라를 망하게 하려는 종북좌익의 계략이다!' 식의 정치공학적 논법으로 FTA를 환원시키려한다. 하지만 이런 단정적 접근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사실 하나의 경제현상에 대해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IMF 수준의 구조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FTA의 파괴력과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그 목소리가 더욱 큰 것은 상식적인 일이다.

   다시 말해, FTA에 대해 의견이 갈리는 까닭은 기본적으로 경제학자들마다, 경제학파들마다, 경제관련 기관들마다 지향성과 분석 방식이 명백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학파, 오스트리아 학파, 포스트 케인즈 주의자 혹은 워성틴 컨센서스의 시각 혹은 스티글리츠나 장하준 -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같은 내용이 완전히 다르게 분석되기도 한다. 하나의 협정문을 두고도 여러 분석이 난무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는 여기에 있다. 완전한 시장자유를 옹호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현재의 자본주의가 극단적이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과 공공성을 늘리자는 쪽이 있다. 개방을 하면 경쟁력이 강화된다는 의견과 여기서 더 개방을 하면 소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이 무너질 것이라는 의견이 대립한다.

  결국 FTA 체결에 따른 경제적 효과 혹은 부작용에 대한 판단은 이론적 분석에 맡길 수 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구체적인 가정’이 등장한다. 실증적인 효과분석을 하기 위해서 현재 국내의 경제 환경, 상대국인 미국의 경제력, 기타 외부환경 등 다른 요소를 종합하여, FTA 내용 하나하나가 어떤 식으로 한국 사회에서 나타날지 - 구체적인 가정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구체적인 가정을 하는 과정에서 의견 차이가 발생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이것을 선진화와 경쟁력 강화라고 주장할 것이고, 회의론자들은 미국의 경제적 제국주의와 한국의 극단적 신자유주의 철학으로 인해 피해가 막심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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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반값 등록금'을 야심차게 내놓았을 때 솔직히 궁금했다. 도대체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 어떤 신묘한 방법을 통해 등록금을 반으로 줄이겠다는 것인가? 그러던 중에 5월 30일 김성식 한나라당 정책위 부의장이  대책을 내놓았다. '소득 하위 50%와 학점평점 B이상' 이라는 기준에 맞춰 장학금을 지원하며 그마저도 부실대학에는 지급하지 않는 것으로 2조원 가량의 예산을 만들 수 있다는 대책이다.

 

 

이걸 진지한 자세로 논평하기 위해서는 도대체 왜 등록금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지부터 짚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 등록금 인상의 주요한 원인을 찾아본다면 등록금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대학 적립금 문제를 그 첫 번째로 꼽을 것이다. 대학이 과도하게 이월금을 적립하고 있으며 이를 투명하게 사용하지 않고, 그러고도 예산이 모자라다는 이유로 등록금을 인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대학은 왜 쓰지도 않을 적립금을 쌓아두고 있는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대학교육의 시장화에서 찾아야 한다.

 

 

군부독재정권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국가가 부당한 방법을 사용하여 불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살고 있었으므로 민주화가 시작된 이제부터는 사회의 각 부분을 국가로부터 빼앗아 와서 시장이 공정함을 보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신앙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학 등록금 문제에 있어서 '자율화'라는 정책으로 나타났다.

 

 

1989년 사립대학의 등록금 자율화가 시작된 것으로부터 2002년 국공립대의 등록금 전면 자율화에 이르면서 대학 등록금과 관련한 교육의 시장화라는 1단계가 사실상 마무리 됐다. 이로써 시장원리에 의한 대학 간의 공정한 경쟁이 시작될 것 같았지만 결과는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듯이 상상했던 것과는 매우 달랐다.

 

 

시장주의자들의 정부는 등록금 책정 문제와 더불어 대학 재정의 운용과 관련해서 대학이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규제를 줄이고 대학의 자율성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하면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가능할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 역시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진 지옥의 문을 여는 데에 일조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들이 다음으로 획책하고 있는 것은 공정한 시장 경쟁이 무한대로 가능할 수 있도록 대학교육의 시장을 엄청난 크기로 늘리는 것, 즉, '교육개방'이다. 영어와 실용학문을 수출하는 외국의 명문대를 국내에 유치해서 기러기 아빠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내용이 이명박 정부의 '서비스 산업 선진화 방안'에 들어있다. '기러기 아빠'는 지금 내가 지어낸 말이 아니고 2009년 5월 8일에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위한 민관합동회의'가 발표한 '경제난국 극복 및 성장기반 확충을 위한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 (요약)' 이라는 문건에 나오는 말이다.

 

 

이런 엄청난 스케일의 세계적인 경쟁을 하면 더 이상 매일같이 '서울대가 세계 대학 순위 50위권 안에 들 수 있는가?'를 가지고 싸울 일도 없고 우리 대학의 경쟁력이 막 강화되며 이는 국가 인적 자원의 수준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지금까지 한국을 좌지우지해온 시장주의자들의 생각이다.

 

 

그런데 잠시 이런 생각을 한 번 해보자. 대학과 관련된 것은 뭐든지 마음대로 하라는 유행에 발맞추어 김영삼 정부 때 대학 설립도 마음대로 하라고 했기 때문에 이미 대학은 공급 과잉이다. 그럼 교육개방이 시작되고 대학교육의 시장화가 완성되면 이들 중 없어져야 할 대학이 몇 개인가? 시장주의자들은 이걸 '구조조정'이라고 부르지만 대학의 입장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걸어야 할 이유가 된다. 진실한 경쟁의 원리는 이렇게 작동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재정을 확보하고 이것을 효율적으로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 효율적인 투자란 무엇인가? 이것 역시 평가를 받는 대학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첫째, 어쨌든 무조건적인 재정건전성을 도모해야 하고, 둘째, 대학평가에서 보다 높은 순위를 얻기 위해 시설에 투자해야 하며, 셋째, 이를 통해 연구 성과를 내야하고, 넷째, 보다 많은 외국인을 유치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학은 이렇게 저렇게 부동산 투자도 하고 주식, 펀드 투자도 하면서 공격적으로 재정을 운용해 왔던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다가 손실을 보면 등록금을 인상하면 되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최근 국립대 법인화와 대학의 재정회계법 개정 문제로 시끄러웠는데 이 역시 국립대를 좀 더

자율화해서 시장원리에 충실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돈을 마음대로 꾸고 마음대로 쓰도록 하는 문제라는 점에서 위에 언급한 대학교육의 시장화 문제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는데, 덕분에 우리 신세만 이 모양 이 꼴이 됐다.

 

 

이런 상황에 보수주의자들이 등록금을 반값으로 만들고자 할 때 취할 수 있는 수단이 무엇이 있겠는가? 첫째로 학자금 대출에 대한 정책을 세우는 방법이 있는데 이건 ‘취업조건부 학자금 대출제도’니 ‘든든학자금’이니 뭐니 해서 이미 실행하다가 욕을 많이 먹었기 때문에 대안이 될 수 없었다.

 

 

둘째는 대학에 직접적으로 지원금을 막 집어넣는 방법이 있는데, 이건 시장 원리에 걸맞지도 않을뿐더러 이미 대학 자율화를 끝까지 밀어 붙이는 마당에 어울리는 방식이 아니었다. 모든 대학에 다 지원금을 넣으면 시장주의자들이 늘 꿈꾸는 대학 구조조정도 불가능해진다. 그러자면 어느 대학에 지원금을 줄지 기준을 정해야 하는데 그 기준을 정하는 게 쉽지 않고 가뜩이나 어지러운 정국에 사학자본까지 나서서 난리를 치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다. 그렇다고 국공립대에만 지원을 하자니 국공립대의 등록금 수준을 높여서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게 하자는 그간의 정책 방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결국 마지막으로 남은 수단이 장학금 제도를 강화하는 것이었고 이것마저도 늘 ‘모럴해저드’를 경계해야 하는 시장원리에 걸맞는 방식으로 하려다 보니 ‘B학점 이상’이라는 누가 봐도 이상한 기준이 나와 버린 것이었다. 일단 ‘반값등록금’이라고 질러놓고 자기들 상식에 맞는 얘길 하려니 죽도 밥도 안 되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결국 이 거대한 ‘해프닝’은 당내 정치를 겨냥한 황우여 원내대표의 초라한 개인기와 ‘대학교육의 시장화’라는 문제를 죽었다 깨어나도 건드릴 수 없는 한나라당 소장파들의 코미디라고 말할 수 있다. 대학의 등록금 문제에 관한한 이들은 영원히 시기상조라는 태도를 견지해야 맞는데, 이번에 워낙 급하게 맞지도 않는 옷을 억지로 입어 모두를 민망하게 했다.

- 이상한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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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 서핑을 하다가 대학생들이 등록금 인하투쟁을 보도하는 기사를 클릭했다. 그런데 밑에 달린 댓글 하나가 가관이다.


‘너희만 힘들 줄 아느냐, 가서 공부나해라!’


이 볼멘소리는 언뜻 보면 20대의 목소리가 '불평' 정도에 불과한 것이며 그들이 '공부나 할 존재'라는 데 설득력을 주는 것 같지만, 오히려 정반대의 상황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나만 힘든 게 아니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다. 기상천외한 대학등록금과 신자유주의 체제 내에서의 불안정성, 좁은 취업문, 견고한 학벌 사회 속에 상당수가 피해의식에 시달려야 하는 대학생들은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 있다. 이에 거리로 나가 자신들이 겪는 곤란함을 의제화 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인데, 이것에 대해 그와 같은 식의 반응이 나오다니 - 이것은 웃음을 유발하는 동시에 기성세대의 하비투스를 충실하게 반영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징후적이다.


‘너희들이 열심히 안해서’


국어교육과 학생으로 생활을 하다 가끔 듣는 소리가 '니네가 열심히 노력을 안해서 임용에 떨어지는거야 이 무능한 것들아' 식의 담론이다. 이런 류의 '게으름과 노력' 타령은 편리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 게다가 현실 직시적이지도 않다. 전혀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종종 이 '게으름 타령' 주저없이 내뱉는 이들의 얼굴가죽으로 구두를 만들고픈 욕구가 생긴다. 편한시대- 압축성장 시대에 사회로 진출해 비교적 쉽게 자리잡고, 수월하게 보유자산을 늘릴 수 있던 세대들. 물론 이들이 노력을 안했다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노력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 따라서 마찬가지로 임용에 붙지 못했다고 졸업한 이들의 학창시절이 전부 '한심한 것'으로 치부되는 것도 불합리하다.


생각해보자. 30명 졸업생 중 1, 2명이 임용에 붙는다. 그리고 나머지는 안타깝게, 혹은 아예 포기해서 낙마한다. 게으른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열심히 공부하다 안타깝게 떨어진다. 이들은 모두 새벽을 꼭 새가면서 적어도 몇 년 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며, 학원, 도서관, 학교를 왔다 갔다 하며 고3보다 더 피 튀기게 노력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게을러빠져서 임용에 떨어진다고? nope. 이것은 사회구조의 문제다. TO가 5%도 안 되는 교육인력시장의 문제인것이지, 이것이 우리의 나태함에서 비롯된 무능력인지는 진지하게 고려해봐야 할 내용이다. 이것을 아직도 '개인의 노력 문제'라고 판단한다면 당신은 말그대로 '전근대'이다. (지금이 포스트모더니즘 막 시작하는 때도 아니고 어느 시절 이야기 하고 있지?) 엄연한 구조적 문제이다.


위와 같이, 지속적인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려는 시도는 사회현상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특히 탈 포드주의 이후 극단적 신자유주의를 택한 한국사회의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IMF이후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가 택한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한국은 '효율성'라는 가치 하에 '하방침투효과'를 극단적으로 노린 구조화 작업에 착수했고, 이 철학은 교육계에도 적용되어 현재 교육인력시장의 문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며, 앞으로도 상황은 별로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허무개그와도 같은 담론들


'20대의 게으름' 담론을 주창하는 기성세대가 내놓는 '시스템의 문제를 자각하나, 어쩔 수 없지 않느냐'라는 투정 역시 허망하기는 마찬가지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거나 대안을 찾으려는 시도를 애시당초 거부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이 제시한 '의제' 수준 역시 '왜 서울대 가는 지방 학생들 비율이 줄어들까'에 수렴하며, 때문에 문제의 기저조차 파악하지 못해 그 해결은 멀기만 하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사회 흐름 인식에 대한 '전근대성'이다. 아직도 70, 80년대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내뱉는 '너희가 열심히 하지 못해 패배자가 되는 거야'라는 기성세대의 꼰대 섞인 소리는 전근대의 전형으로 한국사회의 헤게모니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지금의 40-50대는 ‘노력을 하면 필연적으로 보상을 받는’ 시기에 사회에 진출했다. 두자리수 성장률을 기록하고, 사회 기반을 확충했던 시기에 사회에 진출해 가난함에서 서서히 벗어나 풍족함을 경험했다. 때문에 대부분은 ‘노력을 하고도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는 지금 20대들의 환경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386들과 기성세대들의 생각들은 '경쟁논리'로 승화되어 ‘그러니까 니가 열심히 해야지 어쩌겠냐’ 수준의 담론을 형성하게 된다. 이것은 진지하게 사회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움직임과는 정반대인, 아주 비학문적이고 비합리적인 행위인 것이다. 


즉, 현재 대중들은 인식론을 포기했다. 그래서 남은 것이 '윤리'인데, 이게 아주 낯선 것이다. 이전까지 윤리일 수 없던 것이 갑자기 윤리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경쟁해서 살 놈만 살게 하자”는 슬로건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문제들의 개선이 어려운 까닭은 바로 이 윤리에 바탕 한다. 사회안전망이나 뒷 세대에 배려 없는 정책 추진, 서유럽은 국민소득 5천불 때에 이미 시작한 취업지원 및 실업자 정책-지역사회와 대졸자의 연계, 지원-복지제도를 2만불 시대에도 시행하지 않는 정권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채 '내 자식만 살아남으면 돼' 하고 사교육만 줄창 시켜댄 기성세대들이 모두 ‘88만원 세대’를 만든 공모자인 셈이다


진짜 문제는


다시 돌아와서, 진짜 문제는 대학의 현실이다. 높은 인풋-아웃풋을 자랑하는 서울의 사립대학생들 조차도 IMF 이후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다. '88만원 세대'가 이제 '인서울 대학교'의 학생들에게도 유효한 발언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물며, 지방대생이 겪는 고충이야 오죽할까. 그래도 우리학교 도서관이 늦게까지 붐비는 것은 이들의 ‘희망’을 놓지 않고 노력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그 '희망'을 현실화 한 사람의 수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며, 그 희망을 총량을 더욱 감소시키고 있는 것이 바로 구조자체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시도 없이 젊은 애들을 비난하기에 바쁜 '기성세대의 오만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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