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논쟁이 진흙탕 싸움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표본설정의 문제에 있다.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상대편의 가장 낮은 수준을 타겟으로 잡는다. 예컨대, FTA 찬성론자의 경우에는 FTA의 개념도 모른 채 그저 반 이명박 정서로 협정을 반대하는 꼬꼬마의 블로그의 주장을 대표로 삼는다. 논리정연 할 리 만무하다. 그러면서 '봐라 얘네는 다 뭣도 모르면서 반대한다. ㅉㅉ'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상대편의 가장 수준 낮은 주장을 전체를 대표하는 표본으로 삼아 일반화시키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FTA 반대론자의 경우들은 '종북좌익, 우리나라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 이런 레토릭 밖에 할 줄 모르는 수준 낮은 유저들의 주장을 FTA 찬성의 대표격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반대파의 가장 수준 낮은 의견을 표본으로 삼으니, 자신의 의견은 고착화되고 반대 의견에 대해서는 반감이 극도로 커진다. 때문에 논쟁들은 점점 산으로 가고, 'FTA 찬반'이라는 1차적 갈등 대신 감정적인 2차적 갈등만 커진다. 좌빨, 우꼴, 종북좌익, 친일파, 촛불좀비, 수구꼴통, 전라디언, 홍어, 고담대구와 같은 레토릭이 등장하면 더 이상 정상적인 소통은 불가능하다. SNS가 무법천지의 장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표본설정의 문제, 언론의 문제

  사실 이게 '무지몽매한' 국민이나 네티즌 탓은 아니다. 저 레토릭을 생산한 장소가 바로 제도권 정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누구도 FTA의 기본 정보에 대해서 차근차근 쉽게 설명해 준 적이 없다. 끝장 토론 해놓자고 각 진영 최고 전문가들 불러놓고 생방송이니 아니니, 규정을 갑자기 바꾸느니 하다가 파탄이 났다. 행정부가 제대로 된 소통의 포맷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뉴스들은 외부적 현상에만 집중하여 구체적인 내용을 정리해주지는 않는다. (사실 FTA 뿐만 아니라 모든 시사적 이슈에 있어서, 원래 9시 뉴스와 같은 형식은 전체의 '목차' 정도에 불과하다) 신문 기사도 평소 우리가 지닌 정치공학적 논리와 만나는 순간 혼란만 더 커진다. 여기서 대중매체의 결핍이 드러난다. 어떤 어느 누구도 FTA가 뭔지 핵심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저 주변을 둘러싼 주장들을 소개해놓는 정도이다. TV와 신문을 아무리 봐도 감이 잡히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때문에 배경지식이 부족한 일반 대중이 이 이슈를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밑바탕이 마련되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이건 우리가 스스로 찾아서 떠먹어야 한다.   


추천하는 텍스트들 

  때문에 우선 좋은 표본을 제공하려고 한다. 다만 명심할 것은 관련 배경 지식 - 신자유주의와 9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개방 흐름에 대해 정보가 전무할 경우 읽어봤자 별 효과가 없다는 점이다. 예컨대 디씨인사이드의 FTA 갤러리는 토론회를 꾸준히 챙겨보며 사안 하나하나에 대해 반대 의견이나 기사를 찾아서 논쟁한다. 하지만 기본적인 사회-경제에 대한 틀이 없으니 그대로 '번역' 수준에 그치고 '적용'의 수준에 근접하지 못한다. 자본주의 하의 국제통상의 기본 구조, 신자유주의의 흐름, 한국 90년대 개방 흐름을 이해하지 않고 바로 전문 영역으로 들어가니 발생하는 문제이다. 때문에 이 '틀'을 잡아주는 책으로 다음 두 권을 추천한다. 한국학술정보에서 퍼낸  <WTO와 FTA로 살펴보는 국제무역질서의 이해>와 장하준 교수의 <개혁의 덫>은 현재 한국사회 경제 논란을 이해하기 위한 훌륭한 입문서이다.  FTA에 대한 사항 뿐 아니라, 한국과 세계 경제 질서를 둘러싼 모든 이슈들에 대한 훌륭한 기본 이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1. 책

<한미FTA, 하나의 협정 엇갈린 '진실'>은 FTA 로드맵을 만들고 추진한 대표적 찬성론자 정인교 교수와 대표적인 회의론자 이해영 교수의 토론과 담화를 모은 책이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두 사람 발언을 그대로 실어 비교적 균형감각있다고 볼 수 있다. 

<한미FTA핸드북>은 국제통상전문 송기호 변호사가 FTA 협정문을 분석해서 낸 해설서이다. 실제로 부록에는 가장 논란이 되는 협정문 11장 원본 텍스트가 포함되어 있다. FTA가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구체적인 가정'을 반대 측에서는 가장 잘 정리한 책으로 보인다. 

2. 인터넷 사이트 

외교통상부 FTA 공식 사이트(http://www.fta.go.kr), 한미 FTA 민간대책위원회 (http://www.yesfta.or.kr/)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내용과 개념들에 대해 확인할 수 있다. 어떤 대상의 기본 프로필은 알아야 찬성이든 반대든 입장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퍼낸 홍보 간행물과 회의론자들에 대한 반박문들이 자료실에 업로드 되어있다. 이 곳의 게시판에서는 질문과 응답이 가능하다. 비교적 친절하고 자세하게 답변해주는 편이다.

정태인의 경제 교실 (http://www.hadream.com/zb40pl3/zboard.php?id=people&PHPSESSID=c9134f55c55b0c191ff123beaaebc4e5)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경제비서실장직을 수행하다가 FTA에 반대하여 사표를 낸 정태인 교수의 게시판이다. 그는 노무현 정권 시절부터 FTA를 반대했으며, 강연과 세미나 등을 통해 FTA의 폐해를 구체적으로 알려왔다. 일종의 FTA 관련 정보의 아카이브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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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와 SNS 사이에서

  질문은 다시 이렇게 정리가 가능하다.'구매체는 이 흐름에 어떻게 대응해야 되는가?' 그리고 이에 대한 대답은 매우 간단하게도 기본적인 개념의 '정론지'가 되는 것이다. 신매체들은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고, 개방성과 상호작용성을 지닌다. 이것은 그들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수 있었던 원동력인 동시에 치명적인 결점이기도 하다. 다양한 정보가 필터링 없이 범람하여 질은 보장되지 못하며, 직접 눈으로 앞에 존재하는 인쇄된 출판물이 아니기 때문에 수용자는 가볍게 그것을 넘기기 쉽다. 예컨대, 조회 수가 높은 기사에는 필연적으로 리플이나 트랙백과 같은 피드백의 기능을 통해 추가의 의견이 개입된다. 그리고 이것은 수용자로 하여금 기사 자체의 텍스트와 함께 또 다른 의미를 형성하게 된다.

  이것은 구매체가 인터넷 매체 보다 더 깊이 있는 담론을 생산 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인터넷 블로그의 글들을 열독하는 대신 책을 구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범위를 어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인터넷에는 다양한 정보들이 존재하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는 '파편화'되어 있다. 때문에, 이를 하나의 유기적인 담론으로 재구성해 낸 체계화된 책이나 지면신문과 같은 매체가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정보의 신속성이나 흥미성은 충족이 되었지만 그에 따라 오히려 종합적이고 깊이 있는 담론을 찾기 힘들어진 까닭이다. 신문의 경쟁력은 이 지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돈을 주고 소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 매체임을 자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언론들은 새로운 대응방식을 모색하기 보다는 점점 무협지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반면 SNS나 위키리크스 같은 현재 가장 뜨거운 매체들은 점점 정치와 사회 경제에 치명적인 플랫폼이 되고 있다. 만약 한국의 신문들이 지금과 같은 갈등적 구도와 과잉적 수사에만 치중할 경우 구매체의 가치는 가까운 미래에 사라지고 말 것이다. 스포츠 신문의 연예면이나 다를 바 없는 정치 기사들에게서 그 어떠한 '정통성'이나 '권위'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장은 흥미가 떨어지고 생소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돈을 내고 구입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프랑스의 <르 몽드>나 영국의 <가디언>을 '이 언론의 논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돈을 내고 구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권력과 자본에 독립적인, 공신력 있는 정론지’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흥미거리에만 치중한 무협지와 같은 기사들이 지양되어야 할 진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정론지' 형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사명감이나 언론윤리와 같은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당장 가까운 미래에 살아남기 위한 존속의 문제이다.


-ps 그럼에도 여전히 대안은 모호하고 애매하다 : 그런 언론을 정말 사람들이 바라기는 하는 걸까? 그런 언론이 등장한다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돈을 주고 구입할까? 이 질문에는 누구도 확답을 할 수 없다. 우리는 단 한 번도 권력과 자본으로 부터 독립적이며, 다수의 대중들이 인정하는 - 정론지를 가져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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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절은 늘 곤혹스럽다. 왜 정치얘기만 나오면 결국 멱살을 잡고 싸우고 마는 것일까. 추석 때 마다 벌어지는 노사모인 삼촌과 박정희 찬양자인 할아버지의 다툼 사이에서 나는 늘 긴장을 하고 있어야 한다. 결국 아버지는 우리 가족만큼은 절대 정치 얘기를 하지 말자고 합의를 보았다. 명절 날 친척들 사이의 '소통'은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무림 고수들 간의 대결

  현재 한국 신문들의 정치 기사는 삼국지 인물들의 세력다툼이나 무협지의 서사와 너무도 유사하다. 특히 정당정치를 다룬 기사들은 제목 뿐 아니라 내용까지도 마치 삼국지의 번외편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제도권 정치에 조직 간의 알력이나 인물들 간의 갈등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이러한 이슈들은 정당정치에 있어서 주변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주요 인물들의 갈등을 중심으로 한 자극적인 기사들이 올라오는 이유는 제도권 정치 내에 어떠한 이슈, 시의성 있는 사건을 다룬 기사에 비해 훨씬 잘 팔리기 때문일 것이다. 기사를 구성하는 문체는 더욱 무협지와 유사하다. 세련되지 못할 뿐 더러 인물 중심의 갈등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 과잉적으로 사용된다. 사건을 이해하기 쉽게 구체적으로 풀이해주는 대신 '00파, 종북좌익, 결집, 격돌, 승부처' 등 화려한 수사만 가득한 상황이다. 이는 갈등적 서사와 더불어 기사가 내포하고 있는 상황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준다. 이처럼 인물들 간의 갈등을 중심으로 한 서사와 과잉적 수사가 현재 한국 매체의 정치기사들의 현실이다.

  문제는 대중들이 이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제도권 정치를 계파간의 투쟁이나 영웅들의 서사시처럼 단순화 시켜버리는 것이다. ‘수사적 단순화'를 통해 복잡한 정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실제는 정반대이다. 수용자들은 구체적인 사실 대신 수사적 문구들만을 기억하게 된다. 24시간 뉴스를 청취하며 생활하는 택시기사들의 정치적 담론이 종종 비난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뉴스와 일간지의 정치기사들을 보며 한국 정치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읽는 것들은 속이 텅 빈 '레토릭' 덩어리에 불과한 셈이다. 결국 이를 수용한 대중들은 정치를 대결식 구도와 과잉적 수사로만 인식하게 된다. 흥미를 자극해 가십을 만드는 이러한 주류언론의 태도는 사회를 천박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진보'과 '보수'를 양 축으로 한 한국인의 이분법적인 정치 프레임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정치적 토론이 소모적이고 감정적인 데 언론들이 강한 원인 제공을 한 것이다.

  이처럼 한국의 신문들은 상업주의를 극복하기는커녕 그 구조에 순응하여, 언론을 더 좋은 수익사업으로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단순히 '언론윤리를 배반한 타락한 언론들!'하고 비난만 한다면 그 어떤 문제도 해결될 수 없다. 이런 상황에 대해 혹자는 '언론이 각성하면 된다.'는 식의 해답을 내놓지만, 이는 자본이라는 상부구조를 경시한 허무한 외침이다. 정치 기사의 가십화는 언론도 수익을 내야한다는 기업이라는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 판매부수는 광고수입과 직결되고, 때문에 구독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극적인 기사를 내보내야 한다. 고객의 시선을 끌 수 있도록 정치 뉴스는 과잉적 수사로 포장된다. 최근 포털사이트가 온라인에서 가판대 역할을 하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속화 되었다. 이 결과 주류언론의 정치 기사가 스포츠 신문의 연예면과 다를 바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구독률 전쟁 때문에, 연간 구독료보다 많은 상품을 제공하고 고객 모집 전쟁을 펼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이런 자극적인 구성이 단기적으로는 수익을 올려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살 행위와 다름 없다. 스스로 경쟁력을 깎아 내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우리 언론이 무협지를 쓰고 있을 때 위키리크스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새로운 조류를 만들고 있다. 위키리크스는 매체가 어떤 파급력과 내용으로 승부를 해야 하는 지 지속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해킹이나 불법적 방법이 아닌 내부 고발자들의 자발적인 정보 제공을 통해 새로운 판을 개척한 것이다. 대표적인 SNS인 트위터는 140자라는 제한으로 인해 간단한 형식에 많은 내용을 압축해낸다. 동시에 팔로우(Follow)와 리트윗(Retweet)이라는 기능을 통해 온라인상에서 그 영향력은 더욱 강력하다. 이런 흐름 속에서 과연 한국의 신문들이 미래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Posted by 양피지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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