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은 늘 곤혹스럽다. 왜 정치얘기만 나오면 결국 멱살을 잡고 싸우고 마는 것일까. 추석 때 마다 벌어지는 노사모인 삼촌과 박정희 찬양자인 할아버지의 다툼 사이에서 나는 늘 긴장을 하고 있어야 한다. 결국 아버지는 우리 가족만큼은 절대 정치 얘기를 하지 말자고 합의를 보았다. 명절 날 친척들 사이의 '소통'은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무림 고수들 간의 대결

  현재 한국 신문들의 정치 기사는 삼국지 인물들의 세력다툼이나 무협지의 서사와 너무도 유사하다. 특히 정당정치를 다룬 기사들은 제목 뿐 아니라 내용까지도 마치 삼국지의 번외편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제도권 정치에 조직 간의 알력이나 인물들 간의 갈등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이러한 이슈들은 정당정치에 있어서 주변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주요 인물들의 갈등을 중심으로 한 자극적인 기사들이 올라오는 이유는 제도권 정치 내에 어떠한 이슈, 시의성 있는 사건을 다룬 기사에 비해 훨씬 잘 팔리기 때문일 것이다. 기사를 구성하는 문체는 더욱 무협지와 유사하다. 세련되지 못할 뿐 더러 인물 중심의 갈등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 과잉적으로 사용된다. 사건을 이해하기 쉽게 구체적으로 풀이해주는 대신 '00파, 종북좌익, 결집, 격돌, 승부처' 등 화려한 수사만 가득한 상황이다. 이는 갈등적 서사와 더불어 기사가 내포하고 있는 상황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준다. 이처럼 인물들 간의 갈등을 중심으로 한 서사와 과잉적 수사가 현재 한국 매체의 정치기사들의 현실이다.

  문제는 대중들이 이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제도권 정치를 계파간의 투쟁이나 영웅들의 서사시처럼 단순화 시켜버리는 것이다. ‘수사적 단순화'를 통해 복잡한 정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실제는 정반대이다. 수용자들은 구체적인 사실 대신 수사적 문구들만을 기억하게 된다. 24시간 뉴스를 청취하며 생활하는 택시기사들의 정치적 담론이 종종 비난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뉴스와 일간지의 정치기사들을 보며 한국 정치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읽는 것들은 속이 텅 빈 '레토릭' 덩어리에 불과한 셈이다. 결국 이를 수용한 대중들은 정치를 대결식 구도와 과잉적 수사로만 인식하게 된다. 흥미를 자극해 가십을 만드는 이러한 주류언론의 태도는 사회를 천박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진보'과 '보수'를 양 축으로 한 한국인의 이분법적인 정치 프레임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정치적 토론이 소모적이고 감정적인 데 언론들이 강한 원인 제공을 한 것이다.

  이처럼 한국의 신문들은 상업주의를 극복하기는커녕 그 구조에 순응하여, 언론을 더 좋은 수익사업으로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단순히 '언론윤리를 배반한 타락한 언론들!'하고 비난만 한다면 그 어떤 문제도 해결될 수 없다. 이런 상황에 대해 혹자는 '언론이 각성하면 된다.'는 식의 해답을 내놓지만, 이는 자본이라는 상부구조를 경시한 허무한 외침이다. 정치 기사의 가십화는 언론도 수익을 내야한다는 기업이라는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 판매부수는 광고수입과 직결되고, 때문에 구독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극적인 기사를 내보내야 한다. 고객의 시선을 끌 수 있도록 정치 뉴스는 과잉적 수사로 포장된다. 최근 포털사이트가 온라인에서 가판대 역할을 하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속화 되었다. 이 결과 주류언론의 정치 기사가 스포츠 신문의 연예면과 다를 바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구독률 전쟁 때문에, 연간 구독료보다 많은 상품을 제공하고 고객 모집 전쟁을 펼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이런 자극적인 구성이 단기적으로는 수익을 올려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살 행위와 다름 없다. 스스로 경쟁력을 깎아 내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우리 언론이 무협지를 쓰고 있을 때 위키리크스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새로운 조류를 만들고 있다. 위키리크스는 매체가 어떤 파급력과 내용으로 승부를 해야 하는 지 지속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해킹이나 불법적 방법이 아닌 내부 고발자들의 자발적인 정보 제공을 통해 새로운 판을 개척한 것이다. 대표적인 SNS인 트위터는 140자라는 제한으로 인해 간단한 형식에 많은 내용을 압축해낸다. 동시에 팔로우(Follow)와 리트윗(Retweet)이라는 기능을 통해 온라인상에서 그 영향력은 더욱 강력하다. 이런 흐름 속에서 과연 한국의 신문들이 미래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Posted by 양피지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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