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 2010년 3월호에서 편집부가 한 정신병리학자를 초청해 촛불시위에 대해 ‘비이성적인 집단 광기’라는 분석을 내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귀 틀어막고 2년째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신동아의 한계를 보며 피식하고 웃어넘겼는데, 이번엔 조선일보다. 역시 선거를 앞두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최근 조선일보가 지속적으로 촛불시위에 대해 지면을 할애하며 나름대로 ‘실체를 공개한다!’고 선언했지만 사실 2년 전의 내용들과 다른 것이 없어 보인다. 조선일보가 내린 촛불시위에 대한 분석은 가령 이런식이다. 촛불시위는 마치 사춘기 때의 돌발적인 행동으로서 이성이 없는 질풍노도의 순간 정도로 넘기려는 시도이다. 그들의 판타지는 촛불시위를 잠깐의 ‘일탈’로 규정하려는 데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조선일보와 극단우익세력들의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려고 해도 촛불집회에 70만명이 모이고, 하나의 커다란 사회적 조류를 형성한 것은 설명해주지 못한다.

 조선일보는 ‘좌파세력의 선동에 속았다!’고 말하지만 사실 조선일보가 말하는 ‘좌파’들은 어떠한 채널도 가지지 못한 힘 약한 비주류들의 집합에 불과하다. 보수적인 공중파가 그 불순세력에게 우호적일리 없고, 보수언론들이 미디어시장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그들은 시민들을 선동할 어떠한 방법도 가지고 있지 않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다함께의 ‘이명박은 독재자다!’ 찌라시를 보고 촛불시위에 수십만명이 참가하고 국민 대부분이 지지를 보냈다고 보는 것은 사실 넌센스다. 게다가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운동권을 혐오했다. 한 번이라도 촛불시위 현장에 와 본 사람들이라면 참여자들이 다함께와 같은 운동권이 확성기를 들고 앞에 서기라도 하면 곧장 야유를 보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촛불집회를 ‘386운동권의 종말’로 보는 시각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촛불집회에 대해 심기가 불편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합리적이었으나 불순세력의 개입 이후 변질되었다’라는 애매한 판단을 내리기도 하지만, 그 불순세력이라고 일컬어지는 민노총이나 진보신당, 민노당은 촛불시위 초기부터 있었으며 불순세력이라고 불리는 일당(!)들의 몇 번의 시위지도 시도는 번번히 야유로 무산되었다. 촛불시위의 흐름은 ‘자발성’이라는 일련의 토대위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팩트와 감성 사이에서

 조선일보는 지긋지긋하게 '광우병은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하며 그 발병 가능성이 사실상 0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몇 년째 조중동이 주장하는 ‘광우병이 일어날 확률은 로또 당첨되고+벼락맞을 확률’이 실제로 어느 과학적 텍스트나 논문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글이 길어지지 않기 위해 아래 링크를 참조)
http://blog.naver.com/nuskool/80052336200 
 - 괴담보다 무서운 괴담, 40만분의 1?
http://play.mgoon.com/Video/V1550939/
http://play.mgoon.com/Video/V1550938/
http://ardownload.adobe.com/pub/adobe/reader/win/8.x/8.1.2/kor/AdbeRdr812_ko_KR.e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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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5월 광우병의 실제 위험 가능성에 대한 서울대 수의학과 우희종 박사의 강연과 그에 사용된 PPT 


  2007년만 하더라도 광우병 위험 알리기에 적극 나서며 노무현 정부의 외교를 비판했던 조선일보는, 2008년에는 ‘미국소고기는 안전하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제는 모두가 파악한 이러한 ‘말 바꾸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어떻게든 노무현+진보+좌파 세력을(이렇게 한 세트로 묶는 것도 참 어처구니 없지만) 트집잡으려는 시도’를 넘어 ‘조선일보를 중심에 둔 한국 기득사회의 이해관계’의 거대한 지도이다.

 노무현 정부가 처음 미국과의 FTA를 추진할 때 조중동은 강력하게 반대했다. 당시 대학 면접 준비를 한다며 조선일보의 사설들과 경제면을 탐독했던 나는 누구보다도 뚜렷하게 그 텍스트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몇 주 지나지 않아 갑자기 조중동은 FTA를 급찬성하는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일단 노무현이 저질러 놓은 일이니 반대는 했으나, 자세히 알고보니 FTA를 통해 대형 기업들을 비롯한 일종의 대형 오너들에게는 이익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금새 FTA에 대한 비평을 변경했다.

  어쨌든, 이러한 조선일보의 기사들에게 깊은 신뢰를 보내는 사람들의 바라는 바는 ‘나라를 말아먹는 좌파들이 몰락하고 천년왕국이 도래하는 것’이지만 1)좌파들은 나라를 말아먹을만한 힘도 없고, 2) 그들이 원하는 대로 좌파가 멸망하더라도 그들의 꿈꾸는 왕국이 도래하는 것도 모두 불가능해 보인다. 평소에는 사회 개혁 세력들에게 ‘무능한 좌파’들이라는 딱지를 붙어대다가, 촛불시위와 같은 일련의 사건에서 조선일보는 그 무능한 빨갱이들을 엄청난 파워로 언론을 장악하고 사람들을 세뇌시키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괴물로 변신시킨다

도망치기 담론

  우리는 어떤 딜레마에 부딪쳤을 때 그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것을 고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심리적으로 도망치기 일쑤이다. 알코올 중독자를 남편으로 둔 가정에서는, 그에게 정신과 상담이나 재활치료를 권하는 것 보다는 ‘술만 먹을 때만 그런 거야’라고 오히려 옹호하거나, 매일 그런 일이 벌어지기를 바라지 않을 뿐인 경우가 많다.(우리 집도 그랬으니) 시험을 못 봐 스트레스를 늘 받는 하위권 학생은 공부에 대한 의지를 태우는 것 보다, 컴퓨터 게임으로 도피한다. 그리고는 곧 ‘학습된 무기력증’에 빠진다. 촛불시위에서 나타난 태도들도 같은 맥락이다.

  촛불시위를 인정하고 그것에 일종에 정체성을 부여하게 되면, 한국 사회 체계에 근본적이고 치명적인 결함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때문에 촛불시위를 비정상적인 행위로 간주하고 어떻게든 깎아내려 도피하는 쪽이 훨씬 마음이 편하다. ‘건전하고 멋진 중간층의 신세계’인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이들에게 촛불시위는 그야말로 호환 마마 보다도 더 무섭고 끔찍한 것이기 때문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문제에서 도망치는 것은 해결방법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인정하기 싫거나 똑바로 바라보기 불편하다고 하다고 눈과 귀를 꽉 막고 욕을 해대는 짓은 곧 제 얼굴의 침 뱉기이다.

  광우병 논란과 촛불시위를 꿰뚫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패러다임의 문제이다. 예컨대, 멜라민 과자 몇 박스 먹는다고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 구제역에 걸린 가축을 좀 먹었다고 해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멸종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멜라민 파동 때 행정부의 수반이 ‘멜라닌 과자 몇 박스 먹는다고 사람이 죽나? 괜히 중국이랑 관계 불편하게 만들지 말고 조용하라’고 공석에서 말했더라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여기에서 우리는 이명박 정부의 전근대성을 목격할 수 있었고, 그것들은 다시 우리 곁으로 찾아오고 있다.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 전근대성의 반복을 보면서 우리는 주기로 찾아오는 데자뷰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Posted by 양피지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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