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생각하지마'라는 책은 미국의 민주당이 매번 공화당에게 패배하는 상황을 기막히게 설명해준다. 서민에게 실제로 이익이 돌아갈 정책을 추진함에도 불구하고, 중산층 이상 + 대기업 이익 중심 정책을 펼치는 공화당에게 매번 패배하는 데에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이익에 배반하는 투표를 하는 서민층의 행위에 대해 '프레임'이라는 개념을 적용한다.

 저자가 말하는 프레임이란 사회적 언어를 개인이 받아들일 때 갖추는 '필터'를 의미한다. 프레임은 개인이 사회속에서 가치판단을 할 때 주요한 준거가 되는 동시에, 그 프레임을 통해 많은 사안을 해석한다. 그리고 그 프레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것은 과감히 배척한다. 따라서 누가 먼저 이 '프레임'을 제작해 보급(!)하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 된다.

 미국의 보수진영은 오래전 부터 막대한 투자와 연구소, 매체 장악, 저명한 보수 명사들의 활약을 통해 대중들이 사회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필터인 '프레임'을 먼저 만들고 퍼트렸다. 그리고 후발주자인 진보진영은 새로운 정보와 정책을 만들었지만, 이것을 대중들은 '프레임'에서 볼 때는 '좌파들의 비효율적인, 비경제적인, 소모적인 정책'으로만 느꼈을 뿐이다. 보수진영의 이미지 전략의 성공이다. 즉, 프레임이라는 개념은 '이미지 마케팅'과 같은 맥락에 서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무식함이 아닌 오만함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라는 책이 놀라운 것은 속의 상황들이 국내의 경우에도 잘 부합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먼저 대중들의 프레임을 선점했으며, 대기업, 유산계급 위주의 정책을 펼칠때에 '경제발전' '대기업이 살아야 한국이 삽니다'라는 문구 혹은 애국심을 사용했다.(특히 이 이미지 마케팅은 '경제대통령'이라는 수식어에서 빛을 발했다.)그리고 엄청난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 보수정당이 미리 설정한 프레임을 지닌 서민들에게, 진보 정당들의 정책들은 그저 '빨갱이' '친북좌파' '비효율'로 귀결될 뿐이었다.(그것이 자신들에게 직접 이익이 돌아갈 내용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대중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한나라당 정책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착각속에서, 자신에 이익에 반하는 지지행위를 계속한다.

 
그렇다면, 작년 대선때 지방대학생회들의 이명박 지지선언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미지 마케팅에 의한 판단력 부족' 혹은 '무식함' 과 같은 차원의 문제였을까?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노선은 지방대생들에게 불리한 것 투성이다. 경쟁과 시장자유, 포디즘과 독과점을 기반으로 한 정책들은 결국 지방 대학생들에게는 '독'이다. 효율성을 중시해 기반이 있는 곳에 투자를 하고, 지방에는 경제적 혜택을 주기 힘든 정책들이 그동안 이들의 지향점이었다.  따라서, 지방대생들은 '이명박 반대'를 외쳤어야 타당할 것인데, 되려 적극지지를 선언했다.
 앞서 말한 프레임의 문제 탓일까? 정말 그 이미지 마케팅 전략에 속아서?

 아니다. 답은 그들이 지역 정치세력과 맺은 이해관계에 있다.'학생회장이 ㅇㅇ지구당에서 거액을 받는다'는 수준의 담론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정확한 회계보고를 요구받지 않는 상황에서 지원금과 재단의 명목으로 지원되는 '검은 돈'의 판은 무법천지이다. 그리고 이 무법천지의 판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단연, 가장 강력한 지역세력과 자금력을 지닌 거대보수정당이다.

 
간단하다. '매수'당한 것이다. '학생회장이 되면 본전을 뽑는다': 이 레토릭은 음모론이 아니라 현실임을 학생회 임원들, 지금의 대학생들, 과거에 대학생이었던 사람들 이 모두가 파악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매수'는 불과 1,2년전 일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어져온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음모론'에서 완전히 벗어나 '현실' 이 된 결정적 순간이 2007년 12월,  바로 '지방대생들의 이명박 지지선언'이다.

이해관계- 연결고리에 의해 특정후보지지를 선언해놓고는, 변명이라고 내놓았던 것이 '이 후보에게 이렇게 호소하는 것이 취업문제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 정도의 레토릭이니, 이들의 얼굴 가죽으로 구두를 만들고 싶은 충동마저 느껴진다. 

비극에서 코미디, 다시 비극

2008년 여름, 대선때 이명박을 지지했던 학생회가 지역 촛불집회를 이끌었다. 그들이 '이명박의 오만함'을 거론하며 촛불지지를 선언하는 순간, 2007년 12월의 '비극'은 2008년 6월 '코미디'로 재탄생했다. 그들이 거론한 '오만함'은 이 반전의 기막힌 중심소재이며, 소속학교 구성원들의 지지를 정치적 권력으로 재활용하려 한 그들의 '오만함' 역시 이명박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다시 문제는 대학의 현실이다. 높은 인풋- 아웃풋을 자랑하는 서울의 사립대들 조차도 IMF 이후 '취업난'에 허덕이고있다. '88만원 세대'가 이제 '인서울 대학교'의 학생들에게도 유효한 발언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물며, 지방대생이 겪는 고충이야 오죽할까. 그래도 이 지방대들의 도서관이 늦게까지 붐비는 것은 이들의 '희망'을 놓지 않고 노력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그 '희망'을 현실화 한 사람의 수는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며, 그 희망을 총량을 더욱 감소시키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학생회의 이해관계 - '오만함'이다.

Posted by 양피지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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