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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2.21 언어, 구조와 개인 사이에 다리를 놓다

- <EBS 다큐프라임 - 언어발달의 수수께끼>와 <학교를 무엇인가>를 보고나서 


  <학교란 무엇인가>에 영국 써머힐 학교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말 그대로 온 몸에 전율을 느꼈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졌다. 몇 번이고 영상을 다시 돌려봤다. 그런데 그 날 잠들기 전 문득 혼란스러워졌다. 엄마가 중고등학교 내내 내게 했던 말씀 '악착같이 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긍정의 주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 그래서 공부에는 노력이 중요할까, 환경이 중요할까? 적어도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인의 노력이 압도적으로 중요하다는 쪽인 것 같다.
 

직접적 언어의 폭력

  <EBS 다큐프라임 - 언어발달의 수수께끼>는 어떤 의미에서 <학교란 무엇인가>를 정리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학교란 무엇인가>가 다양한 사례를 미시적인 측면에서 보여줬다면 <언어발달의 수수께끼>는 거시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직접 맞닥뜨리는 구조에 대해서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는 셈이다. 때문에, <학교란 무엇인가> 시리즈를 다 보고도 ‘과연 실생활에서 이것을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가’,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혼란스러웠던 나에게 <언어발달의 수수께끼>는 이를 해결해주는 구체적인 방법론과도 같았다.

  이 다큐멘터리의 핵심은 직접적 언어의 폐해를 유용하게 지적해 낸 데 있다. 가정에서 학교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은 개인의 의지를 강조하는 화법만을 접한다. ‘악착같이 열심히 하면 돼’, ‘노력이 제일 중요해!’ - 너는 충분히 풍요로운 환경에 있으며 노력을 안 한다, 네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성적은 오르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들에게 구조와 환경의 문제를 거론하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서울대 수석 합격’한 어느 시골 고등학생의 토픽성 기사들을 이야기할 뿐이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표본 설정은 어떤 의미도 우리에게 가져다주지 않는다.
 

구조와 개인 사이에서

  사실 이 다큐멘터리가 궁극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부모, 교사 등 기성세대가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갖고 있는 프레임의 오류이다. 교육의 성취도는 개인의 의지와 환경의 교집합이다. 좀 더 거칠게 말하자면 그 개인의 의지-학습에 대한 동기, 성취감에 대한 태도-역시 환경에서 파생된 것이다. 때문에 노력의 강요나 자기계발서식의 긍정의 강요는 큰 효과를 나타내기 힘들다.

 『왜 잘 사는 집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할까?』라는 책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고학력 부모를 둔 학생들이 저학력 노동자층 자녀들보다 공부를 훨씬 잘하는 통계를 설명한 이 책이 제시하는 것은 자녀들을 둘러싼 환경의 문제이다. 중산층과 상류층의 자녀들이 서민들의 자녀보다 성적이 좋은 이유는 단순히 고액 과외를 받아서가 아니다. ‘강북의 부모들은 과외 교사에게 성적을 많이 올려달라고 요구하지만, 대치동의 부모들은 과외교사에게 글로벌 감각을 키워달라고 요구한다’는 우스꽝스러운 반 쯔음 진담이 떠돌기도 한다. 전문직 부모들은 자연스럽게 자녀들에게 심리적 안정감, 동기 부여, 학습에 대한 긍정적 가치관을 형성시킨다. 학력 중산층은 자신들이 누리는 계급적 위치의 장점을 현재의 현실세계에서 향유하며 자녀들은 이를 생생하게 체험한다. 자연스럽게 행복한 삶과 교육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개인의 인식은 그를 둘러싼 환경으로부터 형성된다는 지적이다. <학교란 무엇인가>에 등장한 써머힐 학교의 학생들이 교육에 대한 열망으로 충만하고, 학습 성취도가 높은 이유는 바로 적절한 환경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써머힐의 교사와 행정가들이 만들어낸 획기적인 교육 환경이 학습자들에게 높은 성취를 가져다 준 것이다. 학습에 대한 개인의 의지는 환경으로부터 형성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정이 구조와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않고 모든 것을 개인의 의지로 환원시킨다.
 

교육자 지망생에게 최고의 교과서

  교육은 환경과 개인의 상호작용이며, 그 중심에는 바로 언어의 힘이 존재한다. 학습은 구조(사회, 가정)과 개인(학습지)의 상호작용에서 이루어진다. 때문에 개인을 둘러싼 환경과 구조를 간과한 채 학습자의 의지만 강조하는 부모와 교사들의 인식은 지양되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내뱉는 직접적인 언어들 -‘너는 왜 이렇게 게으르니?’,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해! 악착같이!’-이 쌓이면 곧 폭력이 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그 말을 듣는다고 원래 안하던 애(동기가 존재하지 않는 학습자)가 공부를 제대로 할 리 만무하다.

  이러한 인식의 결함을 지적하고 자발적으로 학습에 대한 동기를 유발시키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다큐멘터리가 전하는 메시지이다. 한국의 교육 문화가 지니고 있는 결핍을 구체적으로 잘 분석한 낸 것이다. 적어도 교사를 꿈꾸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추천해주고 싶다. 특히 <학교란 무엇인가>를 함께 보면서 이어지는 의미를 유기적으로 해석한다면 그것보다 멋진 일은 없을 것이다. 

Posted by 양피지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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