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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20 <지붕뚫고 하이킥>이 여전히 매력적인 이유

<지붕뚫고 하이킥>의 희극답지 못한 흐름과 정치적인 것을 경멸해왔던 사람들은 결말이 작위적이라며 비난을 퍼붓고 있지만, 사실 교통사고로 인한 세경과 지훈의 죽음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되지 못한다. 정작 마지막 회에서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126편 <지붕킥>의 정체성을 종합하는 세경의 마지막 대사이다.

"...언젠가부터 신애가 자꾸 저 처럼 쪼그라 드는 거 같아서. 식탐 많던 애가 먹을 거 눈치를 보고, 아파도 병원 갈 돈이 없을까봐 걱정하고. 그게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가난해도 신애가 자유롭게 떠나갈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어요... (중략)... 검정고시 꼭 보고 싶어서요. 대학도 가고. 아저씨 말대로 신분의 사다리를 하나라도 올라가고 싶었어요. 근데 언젠가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그 사다리를 죽기살기로 올라가면 또 다른 누군가가 그 밑에 있겠구나. 결국 못 올라간 사람의 변명이지만..."

<지붕킥>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부분은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 공중파에서 '현실의 폭로'가 사실적으로 이루어진다. 우회하거나 간접적인 인용 대신 실제로 존재하는 요소들을 그대로 극 안에 들여온 것이다. 서운대를 비롯해 직접적인 신분과 계급에 대한 발언, 이것은 그 동안 '사회적'이라고 외치던 드라마들이 정작 '솜 방망이 비유'에만 불과했던 것에서 진일보 된 것이다. 철저히 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캐릭터와 웃음을 놓치지 않은 채 전개된 하이킥은 충분히 세련되었다고 평가받을만 하다.

 기자들이나 이택광이 지붕킥에 대해 내보이는 '한국 사회의 망탈리테를 잘 드러냈다', 혹은 '부르주아 정상성의 과잉을 잘 표현했다' 와 같은 평가들에 냉소를 보일 이도 있겠지만, 사실 아주 정확한 지적이다. 한국 드라마나 시트콤에서 계급성에 대해 다룬 이야기는 많았지만, 사실 그것들은 '어려운 한 개인(혹은 가족)의 삶'이었지 현실의 요소들을 직접 삽입하면서 견고한 제도와 현실을 '폭로'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김병욱 PD가 <한겨레 21>과의 인터뷰에서 보여준 다음 발언들은 외부적으로, <지붕킥>에 대해 호평을 내릴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주는 동시에 작품의 체계성이 신뢰할 만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 - 캐릭터나 에피소드들이 전작과 비슷하다는 지적도 있다.

= 동어반복이 심한 게 내 한계다. 홍상수 감독 영화를 좋아하는데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보다가 이 사람의 한계를 사랑하기가 힘들어 (관객이) 떨어져나가나 보다라는 생각을 했다. 이번 작품은 멜로라인을 강조하며 물갈이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코미디를 기대한 분들에게 탐탁지 않았을 거다. 사실 예전 같은 코미디를 하는 게 내 우울증 탓에 즐겁지 않다. 세경이의 슬픈 이야기를 하는 게 <똑바로 살아라> 때의 코미디를 만드는 것보다 즐겁다.

- <지붕킥>에 만족한다는 얘기인가.

= 이전과 달리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계급 갈등에 관심이 많아서가 아니라 사회인이니까 가질 수 있는 생각들을 풀어놓는다. <순풍산부인과> 때부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신애의 ‘장래희망’ 에피소드에 들어있다. 우리 사회는 열린 사회라지만 열린 사회가 아니다. 언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신애가 세경이처럼 될 가능성이 더 크지 않나. 가진 자(이순재)가 없는 자(세경)에게 절약을 강조하는 에피소드도 우리 사회 지도층의 이야기일 수 있다. 내가 희망적이지 않은 세계관을 가져서 그런지 이런 이야기를 만드는 게 <똑바로 살아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보다 더 좋다.  (한겨레 21) " 

 하지만 <지붕킥>이 전적으로 비극인가 하는 데는 동의하기 힘들다. 이해관계에 연연하지 않고 여전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2010년 서울의 가족들, 인나의 성공(그럼에도 광수를 버리지 않았던 것), '서운대' 출신으로 취직을 하고 한 기업에 팀장까지 오른 정음의 마지막은 이 시트콤이 비단 우울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동시에 지붕킥의 러브라인이 결코 '대충 만든 맥거핀'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

결국 이 모든 것을 정리하자면, 우석훈 박사가 <88만원 세대>로 한국의 젊은이들의 상황을 규명하려 했듯이, 김병욱 피디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한국의 현실을 재구성 한 셈이다. 그리고 그 재구성된 현실이 공중파의 황금시간대에서 전파된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더욱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Posted by 양피지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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