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5.27 레드콤플렉스와 미디어법 2
  2. 2010.04.25 천안함 성금모금은 불온하다 1

  조선일보는 꽤 똑똑하다. 한국 사람들 대다수가 아직도 ‘레드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것을 깨닫고는 오래전 부터 지속적인 이미지 전략을 실행중이다. 중장년층에게 이 전략은 200% 효과적이며, 매번 선거 때 마다 같은 방식으로 훌륭한 성공률(!)을 기록한 결과 한나라당의 입지는 변함이 없다. 지방선거를 앞둔 2010년 5월에도 이 패턴은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어느 정도는 그들의 전략이 바닥을 드러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젊은 세대들로 갈수록 그들의 이미지 전략에 넘어가지 않는 비율이 점차 많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은 ‘한국의 보수미디어는 과연 그들의 체제를 재생산해낼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쉽게 말해서, 그들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이미지 전략’으로 성공적인 미디어 단층을 마련한 것이 과연 미래에도 가능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불안한 미래’에 대한 방어책으로 대형언론사들이 선택한 방패가 ‘미디어 법’이다. 한나라당이 이러한 대형언론사들에 등에 밀려(혹은 손을 잡고) 강력한 입법을 추진한 것은 자명해 보인다.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조선일보는 좌파를 죽이는 일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좌파를 만들어 내는 일에 관심이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조선일보=한나라당 기관지’라는 공식은 사실 유효하지 않다. 그들은 그저 돈과 권력을 많이 가진 대한민국의 강력한 기관으로 남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삶의 원동력이 되는 모든 불순세력(!)들이 죽어버리면 그들은 존재의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조선일보는 오늘도 한 승려를 좌파로 만들고, 전교조를 김일성 찬양 빨갱이로, 야당을 친북정당으로 만드는 시도를 계속한다. 이렇듯 그들의 존재는 어떤 고유한 정체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좌파에 대한 반대로 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Posted by 양피지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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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함 희생자 가족을 위한 성금 모금 운동이 KBS에서 생중계되는 것을 보면서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체감했다. 중계 내내 반복된 ‘범 국민적’이라는 슬로건에서  일종의 데자뷰를 느꼈기 때문이다.

  1997년 말 한국의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결혼 예물을 기탁했던 사람들의 태도는, 2008년 태안반도 기름 유출 사건 때의 수십만 자원봉사자들이 몰려든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리고 이것은 2010년 천안함 성금 모금 운동으로 이어진다. 구조적인 재앙을 민족주의로 극복하려는 서민들의 순수한 심정이야 절절히 공감되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는 본질적인 문제를 감추어 버리는 레토릭으로 작용한다. 


  권혁범-‘‘태안의 기적’은 불온하다‘

   ‘1997년 말 한국의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초기에는 그것을 초래한 한국 경제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그것을 책임져야 할 정치·경제 엘리트에 대한 시민의 분노가 있었다. 하지만 ‘금 모으기 범국민운동’이 벌어지면서 갑자기 논의의 핵심이 개방적 ‘애국주의’로 옮아가고 그러면서 위기의 원인 및 책임에 대한 탐색은 뒷전으로 밀려나버렸다. ‘위대한 한국인의 저력’ 강조는 손쉽게 민족적인 나르시시즘에 빠져들게 하면서, 한국 사회의 모순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중·장기적 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를 은폐하는 기능을 하였다. ‘온 국민’과 ‘범국민’의 난무 속에서 그 내부에 심각하게 존재하는 다양한 성, 계급, 계층, 지역 간 불균등한 이해관계의 재생산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요구는 설 자리를 갑자기 잃었다. ‘금 모으기 범국민운동’에 대해 가장 많은 박수를 쳤던 것은 누구였을까? 바로 해체의 벼랑 끝에 몰렸던 재벌자본이었다. 더구나 일부 진보층에서 내세운 ‘선진국 음모론’은 한국 사회의 내부적 변혁 요구를 되레 ‘외부’로 돌리는 데 중요한 구실을 담당했다. ‘경제를 살리자’ ‘의지의 한국인’ ‘다시 뛰자 태극기’ ‘제2 한강의 기적’ ‘제2 건국운동’ 등의 슬로건에서 구조적 원인과 변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완전히 묻혀버렸다.’

  ‘연말이면 되풀이되는 ‘불우이웃 돕기’와 ‘소년소녀 가장 돕기’도 마찬가지다. 이런저런 안타까운 사정을 가진 ‘소녀 가장’에 대한 보도가 나오자마자 ARS로 성금이 쇄도한다. 언론은 이런 시민들의 ‘온정’을 부각시키고 성금을 사회적 약자에게 전달하는 매개자 역할을 한다. 하지만 문제 해결에 필요한 사회복지제도의 발전, 정책 변화, 정치적 결정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다.’


  천안함 사건의 초기만 하더라도 군의 이상한 태도와 선체결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던 사람들은 ‘희생자들의 숭고함’을 헤드라인으로 밀고 나가는 언론들에 의해 시선을 돌렸다. 전국적인 분향소가 설치되고 장례가 이루어질 당분간 이러한 흐름은 계속될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안타까운 영웅’이라는 이미지로 천안함 사건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현재의 상류층 절세 정책으로 몇 년 후 국가 재정에 심각한 위기가 발생하거나, 4대강 사업의 후유증으로 환경 재앙이 발생했을 때에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 문제가 발생하게 된 구조적인 원인을 인식하기보다는, ‘나라를 살리자!’라는 슬로건과 함께 또 다시 금반지를 모으고 봉사를 할 것이다.

   결국, 천안함 희생자를 위한 성금 모금 운동을 가장 기뻐할 사람은 희생자들의 가족이 아닌 정부와 군 당국이다. 시선을 돌리는 데 성공한 정부는 이제 한결 숨을 돌리고 보다 무난하게 사건을 마무리 지울 수 있게 된 셈이다. 여기에서는 우리는 온정주의로 포장된 한국 사회의 망탈리테를 재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Posted by 양피지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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