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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07 우리는 정말 게으른걸까?
 

 웹 서핑을 하다가 대학생들이 등록금 인하투쟁을 보도하는 기사를 클릭했다. 그런데 밑에 달린 댓글 하나가 가관이다.


‘너희만 힘들 줄 아느냐, 가서 공부나해라!’


이 볼멘소리는 언뜻 보면 20대의 목소리가 '불평' 정도에 불과한 것이며 그들이 '공부나 할 존재'라는 데 설득력을 주는 것 같지만, 오히려 정반대의 상황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나만 힘든 게 아니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다. 기상천외한 대학등록금과 신자유주의 체제 내에서의 불안정성, 좁은 취업문, 견고한 학벌 사회 속에 상당수가 피해의식에 시달려야 하는 대학생들은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 있다. 이에 거리로 나가 자신들이 겪는 곤란함을 의제화 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인데, 이것에 대해 그와 같은 식의 반응이 나오다니 - 이것은 웃음을 유발하는 동시에 기성세대의 하비투스를 충실하게 반영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징후적이다.


‘너희들이 열심히 안해서’


국어교육과 학생으로 생활을 하다 가끔 듣는 소리가 '니네가 열심히 노력을 안해서 임용에 떨어지는거야 이 무능한 것들아' 식의 담론이다. 이런 류의 '게으름과 노력' 타령은 편리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 게다가 현실 직시적이지도 않다. 전혀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종종 이 '게으름 타령' 주저없이 내뱉는 이들의 얼굴가죽으로 구두를 만들고픈 욕구가 생긴다. 편한시대- 압축성장 시대에 사회로 진출해 비교적 쉽게 자리잡고, 수월하게 보유자산을 늘릴 수 있던 세대들. 물론 이들이 노력을 안했다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노력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 따라서 마찬가지로 임용에 붙지 못했다고 졸업한 이들의 학창시절이 전부 '한심한 것'으로 치부되는 것도 불합리하다.


생각해보자. 30명 졸업생 중 1, 2명이 임용에 붙는다. 그리고 나머지는 안타깝게, 혹은 아예 포기해서 낙마한다. 게으른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열심히 공부하다 안타깝게 떨어진다. 이들은 모두 새벽을 꼭 새가면서 적어도 몇 년 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며, 학원, 도서관, 학교를 왔다 갔다 하며 고3보다 더 피 튀기게 노력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게을러빠져서 임용에 떨어진다고? nope. 이것은 사회구조의 문제다. TO가 5%도 안 되는 교육인력시장의 문제인것이지, 이것이 우리의 나태함에서 비롯된 무능력인지는 진지하게 고려해봐야 할 내용이다. 이것을 아직도 '개인의 노력 문제'라고 판단한다면 당신은 말그대로 '전근대'이다. (지금이 포스트모더니즘 막 시작하는 때도 아니고 어느 시절 이야기 하고 있지?) 엄연한 구조적 문제이다.


위와 같이, 지속적인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려는 시도는 사회현상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특히 탈 포드주의 이후 극단적 신자유주의를 택한 한국사회의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IMF이후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가 택한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한국은 '효율성'라는 가치 하에 '하방침투효과'를 극단적으로 노린 구조화 작업에 착수했고, 이 철학은 교육계에도 적용되어 현재 교육인력시장의 문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며, 앞으로도 상황은 별로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허무개그와도 같은 담론들


'20대의 게으름' 담론을 주창하는 기성세대가 내놓는 '시스템의 문제를 자각하나, 어쩔 수 없지 않느냐'라는 투정 역시 허망하기는 마찬가지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거나 대안을 찾으려는 시도를 애시당초 거부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이 제시한 '의제' 수준 역시 '왜 서울대 가는 지방 학생들 비율이 줄어들까'에 수렴하며, 때문에 문제의 기저조차 파악하지 못해 그 해결은 멀기만 하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사회 흐름 인식에 대한 '전근대성'이다. 아직도 70, 80년대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내뱉는 '너희가 열심히 하지 못해 패배자가 되는 거야'라는 기성세대의 꼰대 섞인 소리는 전근대의 전형으로 한국사회의 헤게모니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지금의 40-50대는 ‘노력을 하면 필연적으로 보상을 받는’ 시기에 사회에 진출했다. 두자리수 성장률을 기록하고, 사회 기반을 확충했던 시기에 사회에 진출해 가난함에서 서서히 벗어나 풍족함을 경험했다. 때문에 대부분은 ‘노력을 하고도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는 지금 20대들의 환경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386들과 기성세대들의 생각들은 '경쟁논리'로 승화되어 ‘그러니까 니가 열심히 해야지 어쩌겠냐’ 수준의 담론을 형성하게 된다. 이것은 진지하게 사회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움직임과는 정반대인, 아주 비학문적이고 비합리적인 행위인 것이다. 


즉, 현재 대중들은 인식론을 포기했다. 그래서 남은 것이 '윤리'인데, 이게 아주 낯선 것이다. 이전까지 윤리일 수 없던 것이 갑자기 윤리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경쟁해서 살 놈만 살게 하자”는 슬로건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문제들의 개선이 어려운 까닭은 바로 이 윤리에 바탕 한다. 사회안전망이나 뒷 세대에 배려 없는 정책 추진, 서유럽은 국민소득 5천불 때에 이미 시작한 취업지원 및 실업자 정책-지역사회와 대졸자의 연계, 지원-복지제도를 2만불 시대에도 시행하지 않는 정권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채 '내 자식만 살아남으면 돼' 하고 사교육만 줄창 시켜댄 기성세대들이 모두 ‘88만원 세대’를 만든 공모자인 셈이다


진짜 문제는


다시 돌아와서, 진짜 문제는 대학의 현실이다. 높은 인풋-아웃풋을 자랑하는 서울의 사립대학생들 조차도 IMF 이후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다. '88만원 세대'가 이제 '인서울 대학교'의 학생들에게도 유효한 발언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물며, 지방대생이 겪는 고충이야 오죽할까. 그래도 우리학교 도서관이 늦게까지 붐비는 것은 이들의 ‘희망’을 놓지 않고 노력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그 '희망'을 현실화 한 사람의 수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며, 그 희망을 총량을 더욱 감소시키고 있는 것이 바로 구조자체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시도 없이 젊은 애들을 비난하기에 바쁜 '기성세대의 오만함'이다.


Posted by 양피지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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