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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형 미국병

비아냥 2011. 2. 27. 00:00
  멀지 않은 과거, 그러니까 60년대~80년대에 젊은 청춘들이 앓았던 '선진국행'에 대한 열병이 있었다. 미국이기도 했고 구라파이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대한민국이 답답하고 낙후된 제한된 장소였고, 그 제한된 곳에서 접한 파편화된 미국은 너무도 근사하고 놀라운 신세계였다. 하지만 이 로망을 이룬 청춘들은 극소수에 불과했고, 그나마 그 로망을 이룬 청춘들은 무리한 미국행에서 오는 엄청난 고난을 겪어야 했다. 이런 고통들은 이제 미화되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재미교포들'이라는 수사법으로 포장되지만, 사실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사실, 말이 좋아 아메리칸 드림이지 연고지가 아니고 기반도 없는 새로운 지역, 그것도 완전히 문화가 다른 타국에서 완전히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사실상 이기기 힘든 게임이었다. 가진 자본이 형편없다면 더더욱 그렇다. 

  <효자동 이발사>에 등장하는 '진기'는 이러한 당시 청춘들의 재현이다. 미국에 대한 판타지로 인해 그는 베트남전쟁에 까지 자원해서 가게 되지만, 결국 손가락들을 잃고 실망감만을 느낀 채 돌아오게 된다. 

  21세기에도 이러한 감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미국인이 모두 잘 먹고 잘 살고 섹시한 줄 알고있는 우리들의 모습은, <투모로우>를 보며 '아 미국은 정말 멋진 나라구나!'를 연별하게 만드는 기제이다. '미국진출'을 '국위선양'으로 착각하는 음반제작자나, 영화감독들 그리고 그들의 '도전정신'을 칭송하는 보도들은 미국병이라는 전근대성, 그 자체이다.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수십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미국이라는 기표의 폭압성이다. 

  사실, 수십 년 동안 한국의 정치, 행정, 사회, 문화의 롤모델은 '미국' 그 자체였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최근에 와서도 '나이든 교수들은 미국이 좋다, 최근 젊은 교수들은 유럽이 좋다 하더군?'라는 식의 레토릭으로 변화되었을 뿐이다. 사실, 미국과 우리나라는 역사와 경제, 사회구조를 통틀어 그 어떠한 유사성도 찾기 힘들다. 하지만 들어가지 않는 구멍을 억지로 넓히며 미국식 모델을 한국 사회에 삽입해왔다. 그 부적절한 국가 운영으로 인한 부작용들은 둘째로 치더라도, 이러한 '미국'이라는 방식은 한국 사회에서 '일방통행'을 강요하는 - 일종의 억압이 되어버렸다.

  가장 일반적인 예로, 한국사회의 양극화와 빈약한 복지에 대해 북유럽이나 프랑스, 독일, 덴마크와 같은 국가들이 대안으로 거론 될 때마다 '에이, 우리나라는 그 나라와는 다르지'라는 식의 냉소가 주를 이룬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그들과는 성질이 달라, 그 국가의 정책들을 도입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동안 역사와 경제, 사회구조를 통틀어 그 어떠한 유사성도 찾기 힘든 미국식 모델을 사회 전체에 걸쳐 이식해왔다. 그런 미국 모델이 '현실적'이고, 이와 다른 방향의 대안들은 '비현실적'이라고 단언하는 논법이 모든 의제에 있어서 주를 이룬다는 것은 참으로 우습고도 슬픈일이다. 

 이렇듯 미국이라는 기표 아래에서 현실은 비현실이 되고, 비현실은 현실이 된다. 매트릭스를 능가하는 억압이 대한민국의 감성을 지배하는 셈이다. 때문에 이러한 감성의 억압 아래에서는 빨간 약이느냐, 파란 약이느냐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그 제약회사가 미국 회사냐 제 3세계의 회사냐가 문제가 될 뿐이다. 

   

  
Posted by 양피지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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